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2017-2018 국가별 기업혁신능력(Capacity for Innovation)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35위를 차지했다. 7점 만점에 4.7점을 받았다. 스위스가 1등(6.2점)이었고 미국(6.0점)이 2위였다. ‘중동의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은 3위에 올랐다. 독일(5위)과 네덜란드(6위) 같은 유럽 국가도 상위권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말레이시아는 14위, 디지털 강국 에스토니아가 26위였다. 인도네시아(31위)도 우리를 앞선다.
우리는 38위 케냐(4.7점)와 비슷하다. 케냐도 혁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케냐의 한 해 모바일 거래 규모는 17억건, 345억달러로 ‘M-PESA’ 같은 디지털금융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케냐 정부는 정식 허가 없이 시범사업을 할 수 있게 해줬다.
경쟁국들의 혁신은 더하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로 인공지능(AI) 대국으로 거듭나고 있고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바탕으로 ‘로봇 신전략’과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춰준다. 유럽의 병자였던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피나는 노동개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공장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전략은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기업의 혁신속도는 느려지고 성장 엔진은 식고 있다. 지난 1980년대 10%대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90년대 7~9%를 거쳐 지금은 2~3%대로 주저앉았다.
주력 산업의 위기는 현실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의 지난해 3·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3,910만대로 시장 점유율이 10.5%에 달한다. 삼성전자(22.3%)와 애플(12.5%)을 바짝 뒤쫓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90% 수준인 중국 가전의 품질경쟁력은 오는 2020년 100%로 같아진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토종업체인 지리차에 뒤졌고 조선과 철강은 중국 업체의 밀어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 생산지수는 2010년 100에서 2016년 72.6으로 27.4%나 급감했다.
경기를 떠받치던 반도체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모건스탠리는 올해부터 D램 가격이 떨어지고 낸드플래시 수요가 감소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도체굴기에 기술격차도 짧게는 1~2년, 길어야 2~3년으로 좁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반도체 의존도(올해 수출 비중 전망 19.9%)는 우리 경제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이 ‘미래’를 얘기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쟁국은 뛰고 있고 우리 경제의 샌드위치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반도체를 대신할 신산업은 보이지 않고 노동과 교육개혁은 더디다. 정부는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 제로 같은 분배와 노동 중심 정책을 펴고 있다. 성장과 분배,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한쪽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적폐청산과 이념 논리에 빠진 탓이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집권 2년차인 만큼 적폐청산보다는 미래와 성장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가 4차 산업혁명 준비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규제 완화와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올해는 채무 문제가 본격화하고 긴축의 시대가 열리는 첫해다. 정부의 올해 총지출 증가율은 7.1%로 문재인 정부 동안 경상성장률 이상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복지지출도 대폭 늘린다. 이 경우 2060년께 국가채무 비율은 62%로 올라간다는 예상이 나온다.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도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 이탈리아의 사례를 답습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 비율은 132%다. 일본(237%)에 이어 가장 높다. 최근 10년간 GDP는 7%나 감소했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탈리아는 정치인들이 인기영합적인 정책에 나서며 마구잡이로 재정적자를 늘리면서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국내 일자리는 이미 레드라인에 들어섰다. 지난해 11월 청년실업률은 9.2%에 달한다. 올해 공공 부문에서만 5만2,000여명을 추가로 뽑고 19조2,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어도 지난해와 같은 32만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과 미래를 봐야 하는 이유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경쟁력이 강화됐는지,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됐는지 봐야 한다”며 “분배나 복지 등 한쪽으로만 너무 갔다면 이제는 돌아와 양쪽을 함께 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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