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 증시의 지난해 외국인 순매수 금액의 40%가 한국 투자자의 자금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찌민 VN지수가 연간 40% 넘는 수익률을 거두며 베트남 시장으로 자금이 빠르게 흡수됐다. 베트남 경제 전반에 장밋빛 전망이 계속되고 있지만 외부 변수에 취약한 신흥국 시장으로의 쏠림 현상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7일 베트남 호찌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외국인투자가들은 베트남 주식을 10억7,554만달러(24조4천억동)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고 국내에 설정된 11개 베트남펀드에 투자한 자금은 4,613억원(4억3,396만달러)이다. 베트남 주식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금액의 40.3%에 해당한다. 1년 새 40% 이상 급등한 VN지수의 상승세를 한국 투자자들이 이끈 셈이다. 직전 2016년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무려 35억1,091만달러(79조7천억동)를 순매도하는 동안에도 한국 자금은 2억9,444만달러나 베트남 증시에 유입됐다.
VN지수가 연초 들어 매일 1%씩 오르는 등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 투자자들의 베트남펀드 쏠림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에 유입된 3조8,073억원의 12.1%가 베트남 펀드다. 국가별로도 인도(3,746억원)와 동남아(3,302억원) 펀드를 가볍게 제쳤다. VN지수에 연동되는 국내에 유일한 베트남 ETF인 한국투자KINDEX베트남VN30증권ETF에 들어온 597억원을 포함하면 베트남 투자 규모는 5,000억원을 넘어선다. 물론 베트남펀드 금액 전부가 베트남 주식을 사들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베트남 펀드들이 대부분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순매수 금액은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2006년에도 비슷하게 전개돼 VN지수 폭락 후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베트남의 장기 성장 가능성과 저평가 매력에 주목해 국내 1호 베트남펀드가 출시됐다. 설정 초기 수익률이 40% 이상 치솟았고 이후 베트남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이듬해 3월까지 월평균 2억달러씩 자금이 몰렸다. 당시 베트남 증시의 외국인 순매수 총액이 1억4,000만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베트남 주식 시장을 한국 펀드가 좌지우지한 셈이다. 2006년 말 VN지수는 약 80종목 4조원가량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 중 10.6%가 한국 펀드로 채워졌다. 하지만 VN지수는 2007년 2월 1,170으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2009년 2월 234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7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VN지수가 곤두박질치자 베트남펀드 역시 숨 쉴 틈 없이 내리막길만 달렸다.
현재 시점에서 당시 베트남 증시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VN 시가총액의 규모는 10년 사이 4조원에서 100조원으로 25배가량 성장했고 VN 시가총액에서 10% 이상을 차지했던 한국 펀드의 비중도 1%로 크게 낮아졌다. 자산운용 업계 관계자는 “긍정적인 성장 지표를 보이는 베트남은 투자 유망 지역”이라면서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신규 상장이 많은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31일부터 공모에 들어가는 PV파워(PetroVietnam Power Corporation)를 비롯해 빈손 정유·석화사(Binh Son Refining Oil) 등 대형 기업공개(IPO)가 올해도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2~3년 새 베트남 증시에서 대형 신규 상장주와 지분매각 종목이 호조세를 보이며 증시 상승을 이끌자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말 국영기업 IPO 활성화를 위한 칙령을 수정하는 등 증시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기조를 강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가치 책정에 거품 우려도 나온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증권사 IPO 관계자는 “베트남 증시의 상승을 이끄는 신규 상장 종목의 기업가치가 높은 상황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는 이른바 ‘꼭지’를 잡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운용사의 관계자는 “한국의 베트남 투자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며 “신규 상장기업의 기업가치와 미국의 금리 인상시 환율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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