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계속 크는데 체중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남자 김연아’로 불리는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국가대표 차준환(17·휘문고).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운동선수는 누구나 힘든 과정을 겪는 것 아니냐”며 웃어 보였다. 올 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차준환은 지금은 176㎝까지 ‘폭풍 성장’했지만 몸무게는 60㎏이 채 나가지 않는다. 종목 특성상 체중관리가 필수이기도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 티켓을 따기까지 마음고생도 심했다.
차준환은 최종 훈련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떠나기 전날인 11일 취재진을 만났다. 대역전 드라마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지 나흘 만이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듯했지만 차준환은 차분했다. “대표선발전 최종전을 준비할 때도 올림픽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연습하지는 않았다. 그저 저의 안 좋은 흐름을 깨고 싶었고 클린 연기(실수 없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수가 뜨고 나서도 (올림픽 참가에 대한 기쁨보다는) 클린 연기를 해냈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밝혔다.
차준환은 지난 7일 대표선발 최종 3차전에서 개인 최고기록을 10점 이상 경신한 252.65점을 기록해 한 장뿐인 평창올림픽 남자 싱글 출전권을 따냈다. 3차 선발전 전까지 이준형에게 27.54점이나 뒤져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지만 차준환은 고난도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 성공하며 기적을 이뤘다. 차준환은 김연아의 2010밴쿠버올림픽 금메달을 함께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캐나다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다.
이번 올림픽에서 차준환은 메달권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며 난도 높은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아역모델 출신으로 ‘초코파이’ TV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던 차준환은 ‘꽃미남’ 외모로 인기몰이 중이기도 하다. 김연아로 대표되는 여자 싱글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던 피겨 남자 싱글은 차준환의 등장이 반갑기만 하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이 평창에서 톱10에 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차준환은 그러나 “올림픽에 참가하는 다른 선수들이 전부 다 저보다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한다는 생각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피겨팬들의 관심은 차준환이 평창에서 과연 몇 차례나 4회전 점프에 성공하느냐다. 3차 선발전 때는 원래 두 차례 시도하던 프리스케이팅 4회전 점프를 한 번으로 줄여 안정성에 초점을 맞췄다. 올림픽에서는 프리에서 두 번을 뛸 수도 있다. 쇼트프로그램 한 번을 더해 총 세 차례의 4회전 점프를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차준환은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고 가정하면 1차 선발전 때와 비슷한 구성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쿼드러플 살코(쇼트)와 쿼드러플 토루프+쿼드러플 살코(프리)를 선보이겠다는 얘기다.
4회전 점프는 차준환에게 약이기도 하고 동시에 독이기도 했다. 강도 높은 점프 연습을 하다 발목과 고관절을 다쳐 1·2차 선발전을 그르쳤다. 평창에 못 갈 뻔했다. 그러나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견주려면 4회전 점프는 필수다. 차준환과 토론토 훈련장 동료이기도 한 소치올림픽 우승자 하뉴 유즈루(일본)는 4회전 점프를 총 다섯 번이나 뛴다. 천신만고 끝에 올림픽에 나가게 된 차준환은 캐나다에서 부상 치료와 4회전 점프 훈련을 병행한다. 대표선발전을 마치고 하루만 쉰 뒤 바로 스케이트를 신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
차준환은 “올림픽에서는 컨디션이 받쳐준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고 난도 구성으로 클린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평창도 평창이지만 오는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권에 진입하는 게 오서 코치와 차준환 지원팀이 생각하는 ‘큰 그림’이다. 차준환은 “이번 올림픽에 개인전에 앞서 팀 이벤트도 나가기로 했는데 이 또한 엄청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이런 경험들이 올림픽 다음 시즌이나 그 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올림픽 직후 주니어세계선수권에 참가하는 등 쉼 없이 달릴 예정이다.
‘남자 김연아’라는 별명에 대해 “조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수줍게 웃은 차준환은 “클린 연기가 목표”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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