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화폐를 둘러싼 정부의 규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거래세를 포함한 보다 폭넓은 논의와 적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3년 전부터 블록체인 관련 생태계를 조성한 싱가포르처럼 시장 참여자들이 심도 있는 논의와 타협을 바탕으로 산업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스위스 블록체인 기업 지브렐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서울경제신문 후원으로 17일 오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블록체인 혁명, 전통경제와의 융합’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의 강력한 규제 방침에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중장기적 발전의 관점에서 시장의 정화 작용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최근 1~2년간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로 떠올랐다며 가상화폐 투기 광풍과는 별개로 정부가 큰 틀에서 관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패널 토론에 나선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우 아시아권 기업은 중국을 제외하면 무시 당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최근 해외를 나가보면 한국의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 관련 기업들이 받는 대우는 과거와 달리 많이 좋아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가상화폐 시장이 초기에 과열된 부분은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행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이렇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또 올 수지 모르겠다”며 “투기적인 부분은 정부가 나서 진정시킬 의무가 있지만 산업 자체를 위축시킬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이슬 HSBC 블록체인리서치팀 애널리스트는 최근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싱가포르를 예로 들며 투기에 따른 규제와 산업 육성은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애널리스트는 “싱가포르 정부는 3년 전부터 블록체인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꾸준한 스터디를 한 끝에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최근에는 정부 주도의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기업이 성장해 투자를 받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은 정부부처 간에도 가상화폐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이참에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열풍이 과열됐으며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인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최근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투자환경을 보면 유사수신행위나 다단계, 불법자금 유출 같은 불법행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을 정해줘 피해자를 막는 움직임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건전한 시장 참여자들 입장에서는 시장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과세 문제를 포함해 투자자와 정부가 공생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 규모에 비해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젝트 수가 적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최윤진 코인타임 대표는 “전체 가상화폐 시장에서 한국의 원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12.3%에 달할 정도로 인구 규모에 비해 높은 수치”라며 “현재 전 세계 약 120개의 가상화폐거래소 중 35개가 한국 거래소이고 빗썸·코인원·업비트 등은 글로벌 20위 안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에 비해 블록체인 기술을 산업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중국의 경우 가상화폐 시장뿐 아니라 베이징은 금융 프로젝트, 상하이는 생활 프로젝트 등이 발달했지만 우리나라에는 프로젝트가 4개에 불과한 것도 한계로 지적됐다. 심지어 의료정보 플랫폼 메디블록은 국내에서 만들어졌지만 중국 블록체인 기업인 퀀텀의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최 대표는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막 꽃을 피우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가상화폐 이슈에서 좀 더 나아가 산업 전반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퍼져나가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짜고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민우·백주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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