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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150건의 한글편지로 엿본 조선 사회

■조선의 한글편지

박정숙 지음, 도서출판 다운샘 펴냄

조선의 한글편지




“안부를 몰라 편지를 하는구나. 어찌들 있느냐? 서울은 특별한 기별이 없고 왜적은 물러났으니 기쁘구나. 나도 무사히 있다. 다시금 잘 있거라.”

선조 임금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정유년(1597년) 9월 20일 셋째 옹주인 정숙옹주에게 이 같은 내용의 한글편지를 적어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아버지들의 무뚝뚝함은 엇비슷하다. 더군다나 그 아버지가 지체 높은 국왕 신분이다 보니 정유재란 이후 피난 다니는 통에 소식 끊긴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용건만 간단’하지만 그 짤막한 행간에 말로 다 담지 못한 깊은 정(情)도 느껴진다. 전쟁이 끝난 후 1603년에는 정숙옹주가 천연두 걸린 어린 동생을 걱정하는 편지를 보내자 선조는 안심시키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역시나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편지였다.

동양미학을 전공하고 서예가 겸 한글연구학자로 활동 중인 ‘조선의 한글편지’ 저자 박정숙 박사는 “선조가 정숙옹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왕이라는 지위와 무관하게 딸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순수한 부정(父情)이 투영돼 있다”면서 “조선시대의 한글편지는 유교적 엄숙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개인의 정감과 생활현장에서 당면하는 일상사에 시각도 담백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조선 시대 각계각층의 인물 83명이 주고받은 150여 건의 한글편지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책 한 권에 응축해 담았다.



사대부 여성들의 편지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한 번민,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눈물겨운 순애보를 적은 이응태 부인, 남성의 패덕을 경계한 호연재 안동 김씨, 궁체의 단아한 모습과 활달한 기상이 어우러져 품격을 드높인 추사의 어머니 기계 유씨 등의 글이 눈길을 끈다. 사대부의 경우 공식적인 역사서는 주로 그 학문적 업적이나 정치활동을 기록하고 있지만 한글편지에서는 체면과 위신, 대장부다운 의연한 기개 등을 잠시 내려놓고 사사로운 감정이 한껏 표출된다. 곽주는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비록 딸을 낳아도 절대로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자네 몸이 건강하면 그만이지 아들딸은 관계가 없네”라며 다독였고, 추사 김정희는 답장하지 않은 부인에게 “지난번 가는 도중에 보낸 편지는 보시었는지요? 그 사이 인편이 있었으나 답장을 못 보았습니다. 부끄러워 아니하셨나요? 나는 마음이 심히 섭섭했다오”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런가 하면 왕과 왕비, 왕족의 한글편지에는 역사적 사건 와중에 그들의 내면에서 펼쳐진 미묘한 감정 변화, 막후 정치의 수완, 왕가의 기품 뿐 아니라 왕족이라 겪어야 했던 불안과 절박함 등이 교차한다. 한글편지로 본 조선사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3만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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