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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알코올 제품의 재발견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도 1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 스타트업 기업과 주류 대기업들이 비음주자들을 겨냥한 저·무알코올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구리 증류기





분위기는 뉴욕에서 흔히 열리는 신제품 출시 행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웨이터들이 한 입 크기의 애피타이저를 들고 돌아다녔고, 접시에는 샤퀴테리 charcuterie *역주: 베이컨, 햄, 소시지와 같은 육가공품와 치즈가 담겨 있었다. 캐주얼 차림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행사장 내 3곳의 바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여기에서 빠진 한 가지는? 바로 알코올이다.

이 점이 핵심이다. 요식전문 웹사이트 푸드52 사무실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세계 최초 무알코올 증류주’ 시드립 Seedlip 출시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뉴욕의 유명 믹솔로지스트 mixologist *역주: 혼합이라는 뜻의 ‘믹스(Mix)’와 학자라는 뜻의 ‘올로지스트(Ologist)’가 결합한 신조어로, 칵테일을 제조하고 기획하는 사람 들이 현장에서 무알코올 칵테일을 제조했다(데드 래빗 Dead Rabbit바의 잭 맥개리 Jack McGarry와 PDT 바의 애덤 슈밋 Adam Schmidt도 있었다). 아몬드 꽃잎, 딱총나무 꽃잎, 기나나무 껍질 등이 칵테일 재료로 쓰였다. 물론 시드립도 들어갔다. 시드립에는 은은한 여름 허브 향의 ‘가든 108’과 좀 더 상쾌한 솔 향이 나는 ‘스파이스 94’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가볍고 청량한 베이스를 만들어 주며, 믿기 힘들 정도로 균형 잡힌 칵테일 맛을 낸다.

필자와 생각이 비슷한 독자라면, 아마 이쯤에서 ‘왜?’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시드립을 개발한 벤 브랜슨 Ben Branson은 “2013년 가을이 사업 아이디어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런던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숲 속 오두막에서 박제 동물을 걸어 놓고,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꽃잎을 압축하고, 허브를 재배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에서 중세 요리법을 검색하고, 다양한 무알코올 치료약을 만들면서 대부분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4개월 후, (평생 금주해 온) 그가 런던의 한 바에서 무알코올 칵테일을 주문하려 했을 때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아 떨어졌다. 무알코올 증류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시드립의 허브 ‘가든 108’



의심스러울 정도로 잘 짜여진 멋진 이야기다. 과거 주류 브랜드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했던 만큼, 그는 명료하고 일관적인 메시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브랜슨은 시드립을 독특하면서도 장인 정신이 담긴, 알코올 칵테일을 대체할만한 자연친화적인 음료로 홍보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작성한 시드립의 제품 설명서는 ‘수확한 원료들을 하나하나 냉수에 불리고 증류시키고 혼합해 자연의 정수를 그대로 담아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가 우연히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것 역시 시드립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허브를 사랑하는 힙스터 스타일의 그의 외모도 브랜드 이미지에 기여하고 있다(그는 턱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썼다. 박제 여우 옆에서 포즈를 취한 그의 사진이 회사 웹사이트에도 올라와 있다).

그는 타이밍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시드립은 식음료 산업이 겪고 있는 지각변동에 잘 편승한 사례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가급적 설탕 섭취를 피하고, 건강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그에 따라 알코올 소비량도 줄고 있는 추세다.

미국 내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뉴욕에서도 술은 사회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알코올은 사내 해피아워 happy hours *역주: 주로 늦은 오후에 갖는 임직원 간 친목 도모 모임 와 생일 파티, 브런치 모임에 늘 주역으로 등장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튀어 보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이들 다수는 동료나 친구들의 질문을 피하려고, 탄산음료나 주스를 주문한다. 브랜슨은 이처럼 비음주자들이 받고 있는 또래 집단의 압박을 덜어주고, 도수 높은 술은 피하는 사람들에겐 힘을 실어주려 하고 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을 때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가 목표하는 시장은 생각보다 크다. 2015년 국가 약물남용 조사연구(National Survey on Drug Use and Health, NSDUH)에 따르면, 미국 성인 인구의 44%가 지난 한 달 간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런 트렌드에 대응해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AB 인베브 InBev와 하이네켄 같은 주요 맥주회사들은 무·저알코올 맥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시드립은 세계 최대 주류업체 디아지오 Diageo의 지원을 받고 있다. 디아지오는 스미노프 Smirnoff, 조니워커 Johnnie Walker, 캡틴 모건 Captain Morgan을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데드래빗의 맥개리는 무알코올 칵테일을 주문하는 고객이 지난 몇 년 동안 조금씩 증가했다고 말한다. 그는 공식적인 광고를 하지 않은 무알코올 음료도 일주일에 50~75잔 정도 판매된다고 덧붙였다.



주요 장애물은 가격이다. 브랜슨에 따르면, 시드립 700ml 한 병은 40달러이고, 바에서 판매하는 시드립 베이스 음료 가격은 일반 수제 칵테일 판매가의 약 3분의 2 정도다. 뉴욕에서 시드립 베이스 음료 한 잔을 마시려면 적어도 12달러는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브랜슨은 타깃 고객들-술을 마시지 않거나 줄이려는 30대 전문직 종사자-이 이 가격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자신이 파는 것은 단순한 칵테일 음료가 아닌, ‘바에 앉아 마실 것을 주문하고 바텐더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는 행위와 경험’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주류 브랜드에서도 이처럼 제품과 소비자 경험을 동일시하는 마케팅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무알코올 제품에 이런 마케팅 기법을 쓴 건 그가 처음일 것이다.




■ 잠재 성장률이 높은 저알코올 음료


하이네켄도 무알코올 라거 맥주를 출시하며, 다른 유럽 및 미국 양조회사들의 트렌드에 합류했다.



저·무알코올 음료 부문은 오랫동안 이미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부문 소비량은 전체 맥주 소비량의 2% 정도에 머물러왔다. 투자 전문회사 번스타인 Bernstein의 애널리스트 트레버 스털링 Trevor Stirling은 최근 “전통적으로 소위 ‘애주가’들은 무알코올 맥주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알코올 맥주가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털링은 앞으로 이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건강을 의식하는 음주 문화를 지향함에 따라 ’저·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변화는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제공 업체 글로벌 데이터 Global Data에 따르면, 전체 맥주의 연 평균 매출 성장률은 2010~2016년 1% 미만에 그쳤지만, 저·무알코올 맥주 매출은 5.2%나 증가했다.

스털링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무·저알코올 부문이 이젠 대형 양조회사들의 ‘주요 우선순위’가 됐다”고 말했다. AB 인베브는 ‘2025년까지 글로벌 맥주 시장에서 해당 부분 비중을 현재 한 자리 수 중반 대에서 20%까지 끌어올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회사는 이미 다양한 종류의 글로벌 무알코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하이네켄도 올해 초 유럽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출시했다. 하이네켄의 저·무알코올 부문 수석 담당자 조니 케이힐 Jonnie Cahill은 “이런 성장세는 대형 양조회사들이 주도했던 전통 방식과는 달리, 건강과 균형을 추구하는 소비자 트렌드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제품들이야 말로 소비자가 찾고 있던 답”이라고 덧붙였다.

하이네켄 같은 기업들이 직면한 과제는 무알코올 맥주 구매를 ’내키지 않은 행위‘라고 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케이힐은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 혹은 절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알코올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운전 혹은 다이어트 같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무알코올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다. 하이네켄은 도수가 높은 제품에 사용하는 마케팅 방식을 저·무알코올 맥주에도 똑같이 적용해 이런 인식을 바꾸려 하고 있다. 케이힐은 “알코올 성분에 대한 특별한 강조점은 뺐다. 만약 알코올 유무를 논하는 식으로 홍보했다면, 우리는 실패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BETH KOWITT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LAURA 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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