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5일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1% 성장했다고 밝혔다.
3.1% 성장의 배경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과 설비투자다. 지난해 재화수출은 전년보다 3.6% 늘어 2013년(4.5%)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14.6%로 2010년(22%)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았다. 민간소비도 전년보다 2.6% 늘어 2011년(2.9%) 이후 6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정부는 올해도 3.0% 성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2년 연속 3%대 성장을 이끌 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0.2%를 기록한 지난해 4·4분기 성장률에서는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났다. 전 분기 1.5%의 ‘깜짝 성장’ 기저효과가 결정적이었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경기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보인다.
무엇보다도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요소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설비투자 증가액의 70.7%는 반도체업종이 차지했다. 슈퍼 사이클을 탄 반도체의 수출 호조가 설비투자 급증을 주도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 증가액(357억달러)은 전체 수출 증가분(784억달러)의 46%에 달했다.
설비투자와 수출의 둔화세도 껄끄럽다. 지난해 4·4분기 설비투자는 0.6% 줄어 7분기 만에 최저치였고 재화수출도 -5.5%로 2008년 금융위기 이래 9년 만에 가장 낮은 분기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나마 반도체 수출은 늘었지만 자동차 등의 부진이 컸던 결과다.
이뿐 아니라 내수와 고용 영향력이 큰 건설투자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건설투자는 3.8% 감소해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은은 올해 연간 건설투자가 0.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가 둔화하면서 지난해 4·4분기 건설업(-1.5%)과 제조업(-2.0%) 성장률은 모두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경기가 꺾이고 있다는 경고는 해외에서도 이미 나왔다. 이달 초 영국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한국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 분석보고서에서 “지난해 12월 기업들이 경기가 좋지 않아 생산을 줄였다고 답했다”며 “한국 제조업은 경기 후퇴 흐름으로 돌아가며 4·4분기를 마감했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한국 경기선행지수도 지난해 11월 38개월 만에 100 밑으로 떨어지면서 경기 하강 국면을 예고했다.
수출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원화 강세, 유가 상승 등 ‘신3고(고유가·고금리·원고)’는 기업 경영환경과 한국 수출에 악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GDP가 0.96%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동근 현대연 원장은 “‘신3고’는 우리나라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는 점에서 더 우려스러운 요인”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압박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이 발동한 수입산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높다.
이필상 서울대 교수는 “무역환경이 굉장히 불안해지고 있어 반도체에 쏠린 수출동력이 약해지면 올해 성장률은 2%대로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신산업 육성을 통한 성장동력 발굴이 우선 과제”라고 조언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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