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은 한국 유통업계의 황제였다. 1979년 개점한 이래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단일 점포 기준으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1999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쇼핑 1번지인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데다 롯데호텔 서울과 바로 붙어 있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은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성이 38년 만에 위협 받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매출의 20%가량을 담당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영업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를 틈타 최근 급성장한 신세계(004170) 강남점이 어느덧 어깨를 겨루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매출 1위를 놓고 두 점포 간의 자존심 경쟁은 올해부터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소공동 롯데 VS 신세계 강남…좁혀진 매출=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 본점은 2016년까지만 해도 1조9,000억원가량의 매출을 기록, 1조3,000억원대였던 신세계 강남점은 물론 다른 경쟁 점포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업계에 따르면 2017년 롯데 본점과 신세계 강남점의 업계 매출 추정치가 1조6,000억원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롯데 본점 매출은 전년보다 10% 이상 줄고 신세계 강남점은 20% 이상 늘어난 효과다.
물론 아직 업체별 지난해 실적이 완전히 집계되지 않은데다 점포별 매출은 상장사라도 공시를 하지 않는 대외비이다. 각 업체들이 경쟁사 점포 매출을 알음알음 파악해 근사치를 만들지만 자료마다 조금씩 숫자도 다르다. 롯데 영플라자 명동과 에비뉴엘 본점, 신세계 지하 1층 스트리트패션 전문관 ‘파미에스트리트’, 온라인 실적 등 매출 범위를 어디까지 적용하느냐에 따라 비교 기준도 바뀐다.
다만 어떤 기준이든 큰 틀에서 두 점포의 매출 규모가 비등해졌다는 것이 현재 업계의 정설이다. 각 업체가 보유한 경쟁 점포별 실적 자료에는 두 점포가 거의 예외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진단된다.
A 유통업체 관계자는 “우리 자체 자료로는 지난해까지는 롯데 본점이 1등을 간신히 사수했지만 신세계 강남점과의 차이가 200억~300억원 수준으로 미미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신세계 강남점이 증축, 새 단장을 하고 1등 점포 목표를 내세울 때만 해도 10년 안에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치고 올라와 업계도 놀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 소공동 본점 입장에서는 지난해 중국 사드 보복이 본격화되면서 유커가 급감한 충격이 컸다. 점포 매출의 20%가량이 중국인으로부터 나왔는데 이것이 지난해부터 크게 줄었다. 반면 2016년 2월 증축, 새 단장을 마치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신세계 강남점은 강남은 물론 서울 시내 최대 규모 백화점이라는 특수를 누리며 승승장구했다. 지리적 특성상 사드 보복 충격도 거의 없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사드로 어려움을 겪은 건 맞지만 아직까지는 롯데 본점이 확실한 1위”라고 강조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 강남점 매출 신장률이 20%를 넘었다”며 “2019년까지 업계 첫 단일 점포 2조원 매출 달성을 목표로 영업 중”이라고 설명했다.
◇1등 자리 놓고 뜨거워지는 경쟁…올해 판가름=유통업계는 두 점포 간의 경쟁이 올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 본점의 수성 vs 신세계 강남점의 추월’이라는 대립 구도가 올해와 내년 사이 결판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밀 관행을 깨고 각 사가 국내 최대 매출 점포라는 타이틀을 확실히 공표할 시점은 ‘첫 단일 점포 2조원 매출 달성’ 때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는 우선 사드 보복 정국이 일찍 마무리되고 유커가 돌아올 경우 올해 롯데 본점의 1위 수성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예상보다 유커 귀환이 늦어질 경우 당장 올해부터 신세계 강남점에 왕좌를 확실히 내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유커가 본격적으로 귀환하더라도 7월로 예정된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오픈이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2016년 오픈했음에도 단 1년 만인 지난해 명동 롯데면세점 본점, 장충동 신라면세점에 이은 부동의 매출 3위 점포로 자리 잡았다.
B 유통업체 관계자는 “롯데와 신세계 모두 최대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다른 기준으로 온라인 등 여러 매출을 점포에 포함시키려 할 것”이라며 “다만 2~3년 전만 해도 롯데 본점과 감히 비교할 점포가 없었다는 점에서 사드 영향을 크게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