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말하는 리테일 분야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았어요. 이런 저를 칭찬해주고 싶네요.”
메리츠종금증권(008560)에서 여성 최초로 전무에 오른 이명희 전무는 보수적인 증권가에서 ‘유리천장’을 깨나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격려했다. 전 직장인 한화증권에서도 계약직 지점장으로 첫 상무보를 단 데 이어 지난 2014년 메리츠종금으로 옮겨서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답변치고는 겸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무는 지난 26일 메리츠종금 강남금융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보수적인 증권가에서 ‘유리천장’을 깰 수 있었던 이유로 리테일 업무의 특성을 들었다. “실적이 모든 걸 결정하는 냉엄한 리테일 분야에서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는 답변을 듣자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리테일 업무 특성상 임원과 평직원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고 뒤처질 경우 언제든 자리를 떠나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이곳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서다. 운용 규모 등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최소 두 배 이상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본인의 능력이 고과를 결정하는 이 분야가 매력 있다고 말한다. 이 전무는 “이 분야에서는 자신이 이룬 실적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잘하면 남성을 제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차별화’.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고객 유치를 할 때 상품 소개를 하거나 수익률을 올려주겠다는 말보다는 고객들의 관심을 얻는 데 집중한다.
이 전무는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경쟁사가 4개 있고 그중 한 곳을 유치하려고 할 때 저는 금융감독원 공시 5년 치를 다 살펴 경쟁사 3곳의 자료를 가져간다”며 “이런 정보들을 가져가면 고객이 재밌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화를 위해 고객의 관심 분야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투자 전략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자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시했다.
이 전무는 “적은 돈으로 여러 종목을 살 수 있고 민첩하게 투자할 수 있는 것이 ETF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시장이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변동성 때문에 투자 매력보다는 위험성이 강조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제대로 알고 투자를 하지 않다 보니 주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있다”며 “주식은 투자자뿐 아니라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투자방법”이라고 설명했다.
85학번인 이 전무는 증권가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여성이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증권 업계 여성 차별은 여전히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10대 증권사의 여성 임원은 40명뿐이기 때문이다.
“제가 바라는 건 숫자로 말할 수 없는 경영관리 쪽에서도 여성들이 능력으로 합당한 대가를 받고 승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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