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7년 7월10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낭보가 날아든다.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12개 등으로 서독과 일본을 제치고 사상 첫 우승을 일궈냈다는 소식이었다. 1967년 첫 출전 이후 불과 10년 만이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쾌거를 올린 선수단이 입국하자마자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산업훈장과 수백만원의 하사금을 내렸다. 서울 압구정동의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700만원 안팎이던 시절이다.
이후 청년 ‘마이스터(장인)’가 겨루는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독주가 이어졌다. 지난 반세기 동안 28번의 대회에 참가해 19번을 제패했다. 중·화학공업 등 제조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뿌리산업 등의 발전도 눈부셨다.
4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기술 경시 분위기는 여전하다.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기능인력 육성이 뿌리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던 명맥도 끊기는 모습. 지난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은 그 절반인 5년에 불과했다. 중국은 2011년 런던 대회부터 참가했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산업에서는 이를 인력난이라는 문제로 체감하고 있다. 정유석 신흥정밀 대표는 “우리나라가 기능올림픽에서 19번 종합우승했었는데 지난 올림픽에서는 중국에 1등 자리를 내주고 2등을 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며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인재상과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의 괴리가 생길 때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형 등을 전문 분야로 하는 신흥정밀은 지난해 매출액이 2,089억원으로 근로자 447명을 거느린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실제로 마이스터가 주축이 되는 뿌리산업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뿌리산업의 인력 부족률은 2.72%(2015년 기준)로 기계(1.31%)나 화학(1.12%) 업종 대비 두 배나 높았다. 제조업(1.74%)이나 자동차(1.71%) 업종과 비교해도 인력난이 심각했다. 그 빈자리는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 2015년 기준 뿌리산업 외국인 종사자는 4만3,241명으로 2012년(2만4,945명)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비중도 6.6%에서 8.6%로 뛰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기술인력에 대한 정책적 지원에 대해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며 “마이스터라는 길을 선택하더라도 긴 ‘라이프 사이클’에서 중산층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청년층에 심어줘야 하는 게 바로 정책의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대기업 강성노조 산하와 그렇지 못한, 수도권과 지방, 전통산업과 첨단산업 간 직능직의 심각한 양극화 해결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중국의 ‘기능 굴기’ 뒤에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전화익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장은 “중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컴퓨터 수치제어(CNC) 선반 및 자동차 정비 2개 직종에 시설·장비투자로만 무려 13억원을 지원했다”며 “한국은 1개 직종당 시설·재료비 등을 포함해 연간 훈련비가 5,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중국의 올림픽 제패 배경을 설명했다.
청년 마이스터뿐 아니라 조선업 등 사양산업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주력업종의 기능공이 다른 분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직업훈련체계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기업에서는 교육체계 개편뿐 아니라 병역특례 등 범부처 차원의 현실적 지원책도 요구한다. 정 대표는 “병역 문제 때문에 꺼리는 젊은이들 많은데 병역특례 등도 될 수 있게 해줘야 고등학교 졸업생이 중견기업 등으로 오는 환경이 그나마 마련된다”고 말했다./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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