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도로다운 도로가 없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적군의 이동로였던 길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숙종의 ‘치도병가지대기(治道兵家之大忌·병가는 도로를 건설하거나 보수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조선 중·후기의 도로정책을 잘 대변한다. 결과는 참담했다. 도로망 확충을 금하고 대내외 교역을 장려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국력 신장을 막아 열강에 나라를 내주는 비극을 초래했다.
오늘날의 고속도로는 국가경쟁력을 상징한다. 또 국민과 지역을 이어주며 국토균형발전을 촉진한다.
우리나라는 고속도로를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장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균형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서울은 지역의 일자리와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지 오래다. 균형발전과 소통·상생의 길, 도로는 서울의 살만 찌우는 통로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균형발전은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이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건설과 혁신도시 조성 등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을 강조한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수도권과 지방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이에 현 정부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강한 실행 의지를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특히 혁신도시와 세종시에 산학연 혁신클러스터 등 지역발전을 선도할 소프트웨어를 조성하고자 ‘혁신도시 시즌2’를 계획 중인 것은 시의적절하다.
국민은 국토 어디에 있든 골고루 잘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균형발전은 지역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전제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수도권 집중화 해소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에 김천으로 이전한 한국도로공사는 올해 신규직원의 20%를 지역 인재로 뽑는다. 이는 정부 목표 18%를 상회하는 규모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산학연 협업모델을 만들어 혁신도시가 혁신성장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공공기관들은 단순 이전을 넘어 지역사회와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도로공사는 취약계층 생활·치료비 지원 등 기존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모든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익형 사회공헌모델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김천에 연고를 둔 도로공사 프로배구단의 스포츠 붐업(Boom-Up)과 나눔 활동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함께 주민들을 단합시키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사회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익형 모델의 좋은 사례다.
그동안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이전 중심의 부동산 개발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공기관이 앞장서 당초 취지에 맞게 자족도시 건설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길도 균형·상생발전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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