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의 채용이 부결되자 고위 인사의 지시로 다시 위원회를 열었다. 그 특정인은 결국 최종 합격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처럼 이미 채용 전형을 시작할 때 합격자가 정해진 경우도 허다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고위인사의 지시로 특정인을 합격자로 내정한 뒤 형식적인 채용 절차를 진행해 최종 선발했다. 이 같은 방식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나 세종학당재단·국립중앙의료원·한국장애인개발원·워터웨이플러스·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 다수의 공공기관에서도 적발된 ‘단골’ 부정 채용 방식이었다. 차라리 해당 내정자를 그냥 뽑았더라면, 나머지 지원자들에 희망고문을 주며 들러리 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뻔뻔한 고위 인사들은 직접 면접장에 나타났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항공안전기술원의 경우다. 이들은 특정인에게만 유리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상 그를 뽑으라는 말이었다.
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기타공직유관단체 1,190곳을 조사한 결과 946개 기관·단체에서 모두 4,788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 부정 청탁·지시나 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33개 기관, 83건은 수사 의뢰를, 중대한 과실·착오 등 채용비리 개연성이 있는 66개 기관의 255건은 징계·문책을 요구했다. 수사 의뢰나 징계 대상에 오른 임직원 197명 중 공공기관 현직 기관장 8명은 즉시 해임이 추진된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행태는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다섯 곳 중 네 곳에서 문제가 있었고 이들은 평균 5건의 비위를 저질렀다. 최근 5년치 채용을 단 석 달간 조사해 나온 결과인데 사실상 공공기관 전반에 채용 비리가 퍼져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일단 드러난 적발사항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식으로 엄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대책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공공기관의 경우 수사 의뢰나 징계 대상에 오를 정도로 확실한 잘못이 드러난 기관장 8명과 직원 189명은 해임하기로 했다. 유관단체의 수사의뢰자 77명까지 더하면 퇴출 대상은 266명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공공기관의 해임 대상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부정 합격자는 현재까지 최소 1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현재 조사 중인 지방공공기관의 추가 부정채용자를 더하면 수치는 훨씬 늘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처리는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범법행위가 확연해져 기소에 이를 경우에는 즉시 퇴출당하며 본인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관계된 사람이 기소될 경우 업무에서 제외된 뒤 해임 절차를 밟게 된다. 정부는 앞서 강원랜드 등 감사원 등으로부터 이미 감사나 조사를 받은 공공기관도 이번에 세운 원칙과 똑같이 관련 임직원과 부정 채용자를 처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앞으로 채용 비리자에 대한 처벌 강화 방침도 밝혔다.
정부는 채용 비리 발생 시 연루자를 즉시 업무에서 배제하고 퇴출하는 원칙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다. 임원의 경우 현재와 마찬가지로 해임하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름도 공개할 수 있게 한다. 직원이 채용 비리에 연루된 경우 업무에서 배제하고 직권 면직할 수 있도록 규정을 일괄 정비하고 채용 비리 관련 징계 시효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또 부정 합격자는 5년간 공공기관 채용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한다.
부정 채용을 청탁한 자의 이름도 공개할 수 있도록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개정도 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경영평가에서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기관에도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궁극적으로 채용 시스템을 개편해 새 정부에서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우선 채용 전 과정에 내부 감사인이 참여하도록 했다. 채용서류는 인사 부서와 감사 부서에서 동시 보관하게 해 상호 감시를 강화했으며 관련 문서는 영구 보존한다.
채용 정보 공개도 확대한다. 모든 공공기관의 채용 정보를 일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시를 확대하고 서류·필기·면접 등 각 전형에는 외부 인사의 참여를 늘린다. 특히 서류 전형에서는 외부 위원 참여를 의무화하고 면접에서는 외부 위원이 50% 이상 참여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지원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불합격자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전형 단계별로 예비합격자에게 순번을 부여하고 이의 신청 등의 절차를 보강하기로 했다. 소규모 공공기관에 채용 비리가 특히 많은 점을 고려해 중소형 기관이 인력을 채용할 때는 지정 공공기관이 위탁·채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서류전형과 면접의 투명성만 확보한다면 채용 비리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며 “감시 요소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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