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곡 최형섭(松谷 崔亨燮·1920~2004) 박사를 아시나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맏형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9일 개원 52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본원에서 한국 과학계의 태두(泰斗) 격인 송곡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KIST는 196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출연연으로 포항제철소 건설계획 수립, 반도체 연구개발(R&D) 등 국가 R&D를 주도해왔다. 이날 이병권 KIST 원장은 “최형섭 박사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KIST의 연구자들에게 그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한다”고 힘줘 말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송곡은 1944년 일본 와세대대학 이공학부 채광야금과 공학사를 딴 뒤 1946년 경성대학(서울대학) 이공학부 전임강사, 1947년 해사대학 교수, 1948년 국산자동차(주) 기술고문을 역임하고 1950년부터 3년간 공군항공수리창장을 지내다가 미국으로 유학해 1955년 노트르담대 물리야금 전공 공학석사, 1958년 미네소타대 화학야금 전공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귀국해 국산자동차(주) 부사장, 1962년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이어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1964년 9월~1973년 3월)한 대가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1,000만달러를 원조하겠다고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 출연금까지 합쳐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해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그는 유학을 간 우수 석학들에게 “가난한 조국이 그대들을 기다린다”고 설득해 ‘과학보국(科學報國)’을 이끌었고 1971년부터 7년 6개월간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하며 과학기술 발전의 선봉에 섰다. 이후에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한국과학원 원장, 유엔과학기술개발자문회의 위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지내고 태국·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정책에도 자문하는 등 2004년 타계할 때까지 국내외 과학발전에 이바지했다.
KIST 측은 “최 박사는 초대 소장으로서 효율적 연구환경 조성과 해외인재 영입 등에 앞장섰고 장관으로서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추진하는 등 과학기술 발전의 큰 별이었다”며 “과학기술 개발이 공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한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날 송곡의 흉상 제막은 KIST가 지난 2016년 설립 50주년을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본관 왼쪽에 설치할 당시 정치적 논란과 대비가 된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왔다. 당시 KIST는 15세기 ‘과학기술 르네상스’를 열었던 세종대왕 시대 맹활약한 장영실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3억원을 기증해 만든 박정희 동상을 그 자리에 세웠다. 앞서 KIST 연우회는 2012년 박정희 동상과 ‘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을 짓겠다며 1억4000만원 이상을 모금했다가 논란 끝에 무산되기도 했다. KIST의 한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 사회의 찬반 논란이 있으나 그가 KIST를 설립하는 등 과학기술계에 남긴 족적까지 폄훼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편 이병권 원장은 이날 존슨관에서 열린 52주년 기념식에서 “과거의 성과들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며 “국민 속으로 다함께 들어가 국민이 체감하는 연구성과 창출에 앞장서자”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52년간 국민의 성원이 있었다. 국가 과학기술 구심체로서의 밑거름 역할을 더욱 성실히 해나가야 한다. 최근에는 국방·안보 관련 기술개발에서 출연연의 역할증대가 요구되고 재해·재난·안전 관련 이슈 역시 범국민적 관심사항이 됐다”고 말했다. KIST는 2016년 50주년 기념식에서 2066년까지 50년간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 연구소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은 ‘비욘드 미라클(beyond MIRACLE·기적을 넘어서)’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오명환 KIST연우회장은 “KIST는 과학기술계 맏형이자 리더로서 깊이 고민하고 누구보다 멀리보고 먼저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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