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상하원 의원들의 간담회 자리에서 제너럴모터스(GM) 군산공장 폐쇄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소식들은 듣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들이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군산공장 폐쇄가 자신의 공이라는 얘기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한국GM 추가 지원 문제로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GM은 날개를 달았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GM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한국 공장 철수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구실도 생겼다. 또 다른 압박 수단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GM의 벼랑 끝 전술은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의 선택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여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정부에 대책을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GM을 돕는 꼴이라는 얘기가 정부 내에서 흘러나온다. 일자리를 너무 강조하면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4일 “정치권에서 정부가 잘못한다고 지적하고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정부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GM이 노린 것”이라며 “최대로 지원을 받으려는 GM의 여론전에 휘말리면 국민 혈세를 낭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는 GM과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를 보여줬다. 일자리가 걸린 문제는 무조건 지원한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조선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성동조선과 STX조선해양은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때문에 한국GM도 일자리 프레임에 갇혀 일방적으로 끌려갈 게 아니라 최악의 경우 GM이 완전히 철수할 수 있다는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치킨게임에는 치킨게임으로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전직 장관 출신 인사는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제대로 된 실사조차 못 하고 수천억원을 GM에 대주는 꼴이 된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협상에 임해야 미국에 밀리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구조조정 저승사자’로 불렸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자신의 책 ‘위기를 쏘다’에서 비슷한 뜻을 밝혔다. 그는 “1997년 12월 초 외환위기 속에서 혼자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의 핵심은 ‘모라토리엄’이었다”라며 “‘채무불이행 선언을 할 각오로 외채 협상을 해야 한다’고 썼다”고 했다. 모라토리엄을 각오하고 협상에 임했다면 국민들이 겪었던 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이 전 부총리의 진단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 산업과 중장기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5,000억~7,000억원 수준의 자금 지원이 자칫 진통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5만4,000대였던 한국GM의 내수판매는 지난해 13만2,000대로 쪼그라들었고 같은 기간 수출도 47만6,000대에서 39만2,000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3년간 누적손실이 1조9,716억원에 달하는데다 지난해에도 6,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봤다. 한국GM에 대한 GM 본사의 장기 플랜과 지원 없이는 적자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자동차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적자가 많다지만 GM이 옛 대우자동차를 5,200억원에 인수해 지금까지 최소 2조원 이상의 이득을 봤다”며 “중장기적 목표와 이에 대한 확약을 받지 못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조언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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