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 시중은행이 신규 계좌 개설에 머뭇거리고 있는 데 대해 “당국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국민·하나은행은 (암호화폐 거래실명제) 시스템을 다 구축해 놓고도 (신규 계좌 개설 등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원장의 발언을 두고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과 함께 암호화폐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규제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한 만큼 실명확인과 자금세탁 우려가 없는 정상적인 거래에 대해서는 일부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최 원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비트코인은 거품이 꺼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고 발언했다가 국회서 지적을 받고 공식 사과하는 등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특히 금융당국도 시중은행이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데 대해 암묵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이 때문에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은 내부적으로 실명확인과 자금세탁 적발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신규 계좌 개설에 머뭇거려왔다.
최 원장은 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전담 검사하는 ‘지배구조 상시 검사팀’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설한 금융그룹감독실 내에 지주금융그룹만 전담 감독하는 별도 팀을 이미 꾸렸는데 이와 별도로 지배구조 검사팀을 또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은 경영 간섭이 과도해질 수 있다고 반발해 또 다른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원장은 “금융회사가 사외이사를 잘 뽑고 있는지 등을 계속해서 체크할 지배구조 상시 감시팀을 만들겠다”며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등의 소프트웨어적 운영 실태를 밀착 점검해 감독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이른바 ‘셀프 연임’도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 최 원장은 “1월 지배구조 검사 결과를 해당 금융지주에 통보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용이 다른 금융회사에도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KB금융지주가 최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서 회장을 배제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내부 규범을 개정했고 다른 금융지주들도 이 같은 방향으로 내규 개정을 유도할 계획이다.
금융회사 임원들의 성과급 환수 규정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현재 금융회사 임원은 성과금의 40% 이상을 3년에 걸쳐 나눠 받고 이 기간에 문제점이 발견되면 성과금을 토해내야 하는데 은행 내부에 구체적인 환수 규정이 미비하다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주요 금융지주에 환수 규정이 마련돼 있다”며 “성과급을 빌미로 금융회사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움직임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지금도 KB나 신한·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는 이미 다 만들어 놓고 있다”며 최 원장이 정확한 팩트를 오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 원장은 지난해 금융부장 간담회 때도 “여전히 회장 후보가 임추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현실과 다르다”는 시중은행의 지적을 들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