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기를 우려해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조달 방식인 코인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데 대해 아마존과 애플·페이스북에 버금가는 블록체인 기반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ICO 규제가 풀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타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율촌이 공동 주최한 ‘제8회 아시아 미래 핀테크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헨리 킴 빈파운데이션 대표는 “한국서 ICO를 준비하던 업체들이 잇따라 싱가포르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헨리 킴 대표는 “싱가포르 정부는 ICO 진행 업체에 기술백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 블록체인 기술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에 최소 자본도 남겨 둬야 하고 현지 인력도 고용하도록 해 거둬들이는 이득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헨리 킴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리빈(Liveen)의 사업화를 위해 싱가포르에 빈파운데이션을 설립했고 조만간 리빈코인(Veen Coin)의 ICO를 진행할 예정이다. 헨리 킴 대표는 “(싱가포르와 비교할 때) 한국 정부가 ICO를 금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는 게 너무 많다”며 “한국 정부가 ICO 규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ICO 준비 업체들이 ICO가 허용되는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으로 나가면서 기술이나 자본유출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ICO를 허용하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도 자금 조달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해질 수 있다고 헨리 킴 대표는 전망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블록체인 업체들은 수백억원의 초기자금이 필요한 데 기존의 벤처투자자(VC)나 기업공개(IPO)로는 자금조달 수요를 충족하기는 불가능하다”며 “기존에 경영하는 기업에 140억원을 투자받는 데 3년 동안 130번 발표를 했는데 ICO를 준비하면서 기술백서 하나 만들어 설명했더니 100억원을 바로 투자해줬다”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헨리 킴 대표는 “외국 투자가들은 신생 블록체인 회사들이 애플 규모를 넘어 ‘시가총액 1경원’도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투자에 나선다”며 “국내 블록체인 업체들이 아마존이나 애플·페이스북을 뛰어넘는 글로벌 1위를 노릴 수 있도록 이제는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아 비티씨코리아 부사장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현황과 보완해야 할 점’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거래소는 암호화폐 거래를 용이하게 해 블록체인 기술 생태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며 “강력한 규제로 암호화폐 거래를 약화하고 억누르면서 블록체인 기술만 따로 육성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정부 규제를 에둘러 비판했다. 비티씨코리아는 회원 규모 기준으로 국내 1위인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을 운영하고 있다. 이 부사장은 다만 거래소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사장은 “꽤 건실한 시스템을 갖춘 거래소들도 현재 적절한 기준이 없다 보니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없다”며 “좀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규정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사장은 “블록체인 산업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면 법적 규정이 우선”이라며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올해 말이든, 내년이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고객 대상 보험을 마련하고 해킹 징후를 탐지할 수 있는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도 갖춰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 거래소들이 파산하면 고객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해 거래소 보험과 별도로 거래소 이용고객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해킹 시 특정 주소로 코인들이 몰려나가는 것을 포착할 수 있는 거래소 전용 FDS도 필수”라고 조언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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