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의 한 소도시 공공건축가로서 역할 하던 중 연면적이 150㎡ 남짓한 보건진료소 설계 자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지역의 현실적 여건에 익숙지 않아 그러했겠지만, 그 당시 그렇게 밖에 지어질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까워 형식적 절차로서의 설계자문서은 작성은 거부하겠다 했었고, 나를 설득키 위한 완곡한 표현이었을 터이지만 담당공무원의 반응이 내겐 너무나 가당치 않았었다. “소장님,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구십니까? 시골에서는 그렇게만 지어 주어도 모든 주민이 아주 좋아한답니다!”
국가의 위기로 까지 인식되고 있는 출산율 저하와 노년사회로의 급속한 변화는 그에 따른 많은 사회 위기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긴급히 조치해볼 수 있는 대책마련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치유 방안을 고민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각박한 생활 속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는 꿈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노인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독거를 감내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탄탄히 의지하던 가족공동체는 이렇게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공동체의 붕괴는 심각한 사회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기에 국가의 온 힘을 모아 가족공동체 회복에 노력해야겠지만, 그의 동인이 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보완적 장치이자 사회적 안정망인 마을의 공동체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로 도시 재생을 통한 마을 활성화에 국가는 목을 매고 있는 이유인 듯 싶다. 마을을 다시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다시 변화시키는 마을 재생의 첫 단추는 그렇기 때문에 개별이 아닌 함께 사는 공동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고, 그의 촉매제가 바로 각각의 주택과 더불어 공유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공공간과 공공건축물일 것이다.
공공공간은 집만큼, 아니 어찌 보면 각자의 집보다 더 좋아야만 한다. 우리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근린공원은 모두가 머물고 싶게 하여야 하고, 마을의 길은 거닐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집, 노인정, 복지회관, 생활체육센터 등은 모든 사람들을 환영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고, 쾌적해야만 한다. 그래서 함께 자연스럽게 모이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공공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공공시설들의 양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들의 질적 향상에 전념해야만 할 때이다. 이것은 건축의 질을 논하기에 앞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질을 논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현재의 치열하기만 한 한국사회는 모두를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만으로는 의지하기에 부족하거나,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가 공고하지 못할 때에도 여전히 따듯하고 존중받는 삶이고,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면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시설로서 제공해야 할 의무를 국가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함께 사는 이 시대의 공동체의식이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고, 이 공동체의식의 회복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사회의 윤활유가 될 것이다.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밖에는 남지 않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보건진료소는 그들의 건강지킴이뿐 아니라 마을의 사랑방이자, 남루함을 면할 수 있는 안식처인 것이기에 잘 지어져야만 했다.
시대를 대표해 역사에 길이 남을 웅장한 전당을 건립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속에 담길 수 있는 생활밀착형 공공시설의 건립이다. 이는 생활을 전제하기에 가까이 있어야 하고, 또한 생활의 윤택함과 요긴함을 담는 생활의 공간이기에 각기 요구하는 다양한 용도로 잘게 부수어 마을 깊숙이 흩뿌려져 공공의 서비스를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특별한 기념을 축하할 특별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아주 가끔의 외식도 필요하겠지만, 매일 삼시 세때를 건강하고 즐겁게 책임질 주식과 같은 존재가 바로 마을의 공공시설과 공공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클 필요 없고, 하지만 매우 건강한 환경이어야 한다. 한 건축학자는 이를 ‘마을의 보석 꽂기’라 칭한다. 그 보석이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여러 개의 보석이 내 옆 마을 안에 있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각자도생을 넘어 함께 누릴 풍족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십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대단위 도서관도 있어야 하지만, 점심후 휴식시간을 이용 간단히 책과 함께 담소를 나눌 작은 도서관은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에 태어나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환경을 조성하고, 가꾸는 건 사람이지만, 결국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 또한 양질의 다양한 품격을 갖춘 공간환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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