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2016년 최종 승소한 세탁기 반덤핑 분쟁과 관련해 지난 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7억1,100만달러 규모의 보복관세 신청을 했는데 미국과 금액을 확정하기 위한 중재 협의 중이다. 중재가 끝난 뒤 어떤 품목에 보복관세를 물릴지는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 들어서는 수입규제 등 미국의 ‘통상 때리기’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세탁기 반덤핑 분쟁과 관련해 보복관세를 신청한 데 이어 24일에는 미국이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등의 품목에서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곧바로 WTO 제소 카드로 맞대응하기도 했다. 사상 유례없이 WTO에서 최우방국인 미국과 5건의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의 철강에 고율의 관세를 적용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쇠고기는 11억7,725만달러로 전체 수입품 중 1위였다. 우리나라가 쇠고기 등 농산물을 건드리면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공세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국이 철강 보고서에서 특정한 12개 국가 중) 협력할 수 있는 국가와 상의해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결정 전이다. 국제공조보다는 대미 ‘아웃리치(외부접촉)’를 하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공조는 특정 12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미국의 철강 수입규제는 모든 철강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관세를 부과거나 물량을 줄이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따르면 EU는 미국의 알루미늄·철강 수입 규제에 대비해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는 미국산 제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보복관세 대상 품목으로는 토마토·감자·오렌지주스 등 농산품과 식료품이 주로 올랐지만 테네시·켄터키산 버번위스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처럼 특정 지역 상품이나 구체적인 회사 제품도 포함됐다. FAZ는 EU 당국자를 인용해 “EU 회원국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U는 또 이날부터 미국산 연료용 에탄올에 9.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온 조치에 대한 일몰재심(expiry review)에 돌입, 조사가 끝날 때까지 15개월간 과세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에탄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는 2013년 2월23일부터 적용돼 23일 만료 예정이었다.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오는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철강·알루미늄 수입제한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EU는 관세 폭탄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의 불공정 무역을 지적하는 등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EU는 미 유력 정치인의 지역구 특산품을 보복 리스트에 올려놓으며 백악관뿐만 아니라 의회까지 압박하고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는 “버번위스키가 주로 생산되는 켄터키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할리데이비슨 본사가 위치한 위스콘신은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지역구”라며 “리스트 속 일부 품목은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당시에도 논의됐지만 상당수는 최근 미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세종=김상훈기자 김창영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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