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자의 증거 확보를 위해 기업의 영업비밀까지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추진한다. 소액·다수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구제를 위해 소비자분야에서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에 대해서는 ‘전면 폐지’, ‘보완 유지’, ‘선별 폐지’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는데, 어떤 안이든 대폭 손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집행체계개선 테스크포스(TF)’ 최종 보고서를 확정하고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가맹·유통·대리점 분야 ‘유통 3법’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부과수준을 대폭 높이는 내용 등을 담은 법집행체계개선 TF 중간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당시 논의가 마무리 되지 않은 7개 과제에 대한 TF의 입장을 담았다. 공정위는 이 최종보고서에 대한 입장을 마련하고, 국회에 제출해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심의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방안에 포함할 계획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선 사안은 피해자의 증거확보를 돕기 위해 손해배상소송에서 기업의 자료제출 의무를 공정거래법에 못 박는 방안이다. 특허법에서 기업이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특허 침해의 증명과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한 때에는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한 부분을 참조했다. TF 위원들은 법원이 요구할 경우 공정위가 심사보고서와 그 첨부자료를 포함한 사건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부분 공감했다. 다만 영업 비밀과 사생활과 관련된 사안의 자료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는데, 어떤 방식이든 영업비밀의 해당하는 자료 목록은 공개해야 한다.
담합 사건 등의 경우 그 피해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대체로 소액 피해인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소송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보완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소비자 분야에도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 다만 도입 범위를 담합·재판매가격유지·제조물책임·표시광고 4개 분야로 한정할 지 공정위 업무 범위 전반으로 폭 넓게 도입할 지에 대해서는 확정 짓지 못했다. 소송제기가 어려운 피해자를 대신해 국가가 소송을 제기하는 ‘부권소송제’의 경우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도입의 필요성은 대부분 인정했지만 미국 외에 사례가 없는데다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가 있는만큼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직접 대금 등의 지급을 명령하는 ‘지급명령제’ 도입도 의견이 엇갈렸다.
지난 중간보고서 발표 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보 의견을 냈던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공정위와 검찰간 협업을 통해 중복조사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폐지시 담합적발의 핵심수단인 ‘리니언시(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가 무력화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보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경제분석의 필요정도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제시된 안을 살펴보면 최소한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에 대한 보완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도급법과 표시광고법의 전속고발제 역시 폐지와 존치 의견 모두 나와 공정위의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대체적 분쟁 해결 제도(ADR)’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분쟁 조정 대상을 확대하고, 조정-중재 연계 제도 도입, 집단분쟁조정 직권개시 등을 추진하기로 의견이 모아 졌다. 독과점 기업집단을 강제로 떼어놓는 ‘기업분할명령’ 등 시장구조개선명령제를 도입할 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렸는데, 도입되더라도 매우 제한적인 적용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중지를 모았다. 독과점 기업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마음대로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공정위는 조사·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사안도 대폭 개선한다. 현재 고시로 규정돼 있는 사건처리 절차 관련 사항을 법률에 상향 규정하고, 기업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심의를 종료하는 ‘심의절차종료제도’는 그 기준을 엄격히 하거나 폐지하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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