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이 22일 오전 배리 엥글 제너럴모터스(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 부문(GM International) 사장에게 정부의 구조조정 ‘3대 원칙’을 전했다. 엥글 사장은 오후에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따로 만났다. 엥글은 왜 두 차관과 만났을까. 기재부는 GM의 핵심 요구사항인 산업은행 출자와 대출의 키를 쥐고 있다. 산업부는 구조조정 주무부처이면서 외국인 투자지역을 담당한다. 하지만 산업부는 산은을 움직일 권한이 없고 산은은 금융위원회가 1차 접촉 대상이다. 산업부가 산은의 추가 출자 불가 방침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다.
구조조정이 혼돈에 빠졌다. 협상창구는 뒤섞이고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구조조정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당장 부처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주무부처를 산업부에서 금융위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조차 이날 “관계부처·기관 간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국회에 출석한 고형권 차관은 “(GM이) 다른 부처를 만나서는 다른 얘기를 한 것으로 드러나 여러 곳의 얘기를 취합해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개입도 도를 넘었다. 여당 소속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21일 “대략 추산해봐도 (한국GM에) 2조~3조원이 들어가지 않겠나”라며 “산업은행이 지분만큼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밝혔다. 정치권이 정부의 협상 내용과 방식까지 제시한 셈이다.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감안한다는 ‘신(新)구조조정 방안’도 일을 더 꼬이게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성동조선과 STX조선해양은 문재인 정부 들어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를 중국 기업 더블스타에 인수 후 3년간 고용보장 조건으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채권단이 책임회피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는 방산업무를 하고 있는데다 중국에 기업을 매각하는 데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다. 정부 내에서도 “산은을 포함한 국책은행이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권에서는 2조9,000억원의 혈세가 들어간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때보다 지금이 더 혼란스럽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우조선 때는 금융위가 총대를 메고 이해관계자와 여론을 설득해 일을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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