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반도체 호황에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물량이 4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늘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조치로 직격탄을 맞았던 화장품 수출도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연초부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 영향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량지수 잠정치는 147.23(2010=100)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 올랐다. 수출물량지수는 지난해 10월 최장기 추석연휴 여파에 반짝 하락(-1.9%) 하락했다가 한 달 만에 반등한 뒤 석 달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상승폭도 지난해 9월(19.6%) 이후 최대다.
지난해 대비 올해 1월 조업일수가 많았던 것도 수출물량 호조에 기여했다. 한은 관계자는 “설 연휴가 1월에 있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설 연휴가 2월로 밀려나면서 지난달 전년 대비 조업일수가 2.5일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교역 증가와 반도체 호조에 따라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수출물량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구체화한 것은 아니다”라며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평가했다.
품목별로 보면 전기 및 전자기기(19.4%), 화학제품(14.1%) 등 우리나라 수출 ‘효자 품목’들이 선전을 이어갔다. 전기 및 전자기기 중에서는 D램, 플래시메모리, 낸드플래시 등 집적회로가 14.8%, SSD 등 컴퓨터 기억장치가 67.1% 늘었다. 이밖에도 반도체 제조장비를 포함한 일반기계가 21.4%, 반도체 검사장비 등 정밀기기가 19.5% 올라 전반적으로 반도체 훈풍의 힘이 컸다.
화학제품 수출도 호조였다. 특히 화장품이 40.7% 늘어 지난해 2월(83%) 이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중국에서 화장품 수출 물량이 늘었다”며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잠잠해진 여파”라고 설명했다.
달러로 계산하는 수출금액지수는 133.76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7% 올랐다. 물량보다 금액의 상승폭이 큰 것은 수출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한편 수입물량지수는 142.33으로 전년동월대비 12.9%, 수입금액지수는 130.06로 21.9% 올랐다. 수입물량지수 상승률 역시 지난해 9월(15.1%) 이후 가장 컸다. 다만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로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수입금액지수 증가폭이 더 컸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일반기계가 27.4% 늘어 큰 폭의 상승세를 유지했다. 반도체 호조에 따른 설비투자 수요가 반영됐다. 외국산 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수송장비도 35.6% 늘었다.
수출총액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나타내는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지난달 146.38으로 13.6% 증가했다. 수출물량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반면 상품 1단위를 수출한 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99.42로 0.9% 하락했다.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수출가격(7.0%)에 비해 수입가격(8.0%)이 더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