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을 코앞에 두고서도 한국은행이 27일 기준금리를 연 1.50%로 만장일치 동결했다. 물가 상승세가 아직 더딘데다 거센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 한국GM 사태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돌발 변수까지 불거지면서 섣불리 기준금리를 올리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로써 3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이주열 한은 총재는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회의도 ‘신중론’으로 끝냈다. 다만 한은이 올해 상반기에라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뒀다. 다음 달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유력한 가운데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시계가 빨라지는 흐름에 발맞추려면 한은도 인상 시기를 마냥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차기 한은 총재와 5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향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미국 행정부의 통상압박 확대 등 불확실성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며 “당분간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한 달 사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크게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세탁기·태양광패널 세이프가드에 이어 철강 관세, 호혜세 등 보호무역 카드를 줄줄이 꺼내면서 한국 경제 성장의 버팀목인 수출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 한국GM 사태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고용 시장에 우려를 더하는 요인이다.
더딘 물가상승률만 봐도 한은이 과감한 금리 인상에 나서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8%에서 11월 1.3%, 올해 1월 1.0%로 17개월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한은의 목표치(2%)에 한참 못 미친다. 경기가 좋아지고 수익성이 좋아진 기업의 고용 수요가 늘어나 임금과 물가가 오르는 선순환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만만치 않은 국내 경기 전망에도 금리 인상의 불씨는 남겨뒀다. 이 총재는 불확실성 증대에도 “성장세는 지난 1월 전망(연 3% 성장)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도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현재로서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최근 여권과 정부에서 꺼낸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에도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는 여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며 정부의 추경과 한은의 금리 인상이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윤여삼 메리츠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주열 총재가 올 상반기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마무리했다”며 “차기 총재가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여건을 마련하는 계기로 이번 금통위를 활용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대외 여건상 한은이 기준금리를 마냥 내버려둘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연 1.5~1.75%)하면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이 한국(연 1.5%)보다 높아진다. 2007년 8월 이후 11년 반 만의 기준금리 역전이다.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된다고 곧바로 대규모 자본유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전 폭이 확대되거나 기간이 길어질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초완화 정책을 고수했던 일본과 유럽마저 긴축 시기를 재고 있다.
시장에서도 점차 한은의 5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새 총재 취임 직후인 4월은 어렵더라도 5월에는 인상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미 연준에 앞서 한은이 먼저 역전 폭을 좁히는 성격도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가팔라진 기준금리 인상 일정에 보조를 맞춘다는 차원에서 5월이 인상 시점으로 적절하다”고 예상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올해 네 차례 금리를 인상하고 신임 한은 총재가 매파적 성향으로 파악될 경우 시장은 5월과 하반기까지 연 2회 인상 가능성을 더 높게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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