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3월이 정말 분기점이다. 과거의 여러 위기설과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시험대가 될 것”이라면서 “관리 여부에 따라 4·5월의 고비를 넘을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동시다발 악재가 즐비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개정협상 및 철강 관세 부과 등 미국의 통상압박부터 미국의 환율보고서 작성, STX·성동조선 및 한국GM 구조조정, 남북대화까지 3월 한 달간 우리 경제에 불어닥칠 위기요소들이 줄지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특사를 보내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 앞에는 하나도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메가톤급 악재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3월의 과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북한의 태양절’ ‘미국 환율보고서 발간’ 등이 예정된 오는 4월에는 감당하지 못할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리 경제에 놓인 주요 위기요인을 짚어봤다.
◇무역전쟁-美 관세폭탄에 FTA 개정까지...거세지는 통상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주 수입산 철강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무역확장법 232조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이미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이 보복관세를 시사하는 등 반발을 하고 있다. 미국과 EU·중국이 보복조치를 주고받는 등 우리 통상당국이 관리하기 힘든 수준으로 통상 문제가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개정협상도 방향을 알 수 없다.
미국의 통상압박이 임박한 상황에서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6일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3일 만에 다시 유턴하는 것으로, 우리 정부의 다급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 본부장은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와 관련한 주요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앞서 김 본부장은 지난주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 윌버 로스 상무장관, 의회 주요 인사 등을 만나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하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채택되도록 미국 측에 강력히 요청했다.
미국이 지난 2월 발동한 세탁기·태양광 모듈 및 패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수위도 최종 결정된다. 현재 통상당국은 미국과 보복관세 규모 등을 놓고 중재 협의를 하고 있다. 수위에 따라 한미 통상관계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도 3월 말 본격 막이 오를 예정이다.
◇환율보고서-환율조작국 지정땐 원화강세...수출 직격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포문을 연 글로벌 통상 보복전이 ‘환율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 내수시장이 커 수출 타격이 덜한 EU 등과 달리 뚜렷한 대응수단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화 강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미국이 통상압박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4월로 예정된 환율보고서에 어떠한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외환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 지정을 위한 세 가지 중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2016년 4월부터 네 차례 연속 환율조작국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외환당국은 환율조작 시비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미세조정 외에는 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2.8%나 뛰어 주요20개국(G20) 중 두 번째로 높은 절상률을 기록한 데는 이처럼 외환당국의 손발이 묶인 영향도 크다. 미국은 올해도 229억달러 규모의 대(對)한국 무역적자를 구실로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 재무부는 환율조작 여부 검토 근거에 기준이 모호한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 Act)까지 추가해 수위를 더욱 높였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미 재무부와 접촉해 설득하고 있지만 미국 측에서도 종합무역법에 따른 환율조작국 지정은 재무부 소관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는 입장”이라며 곤혹스럽다고 귀띔했다.
◇구조조정·일자-STX·성동 운명결정...문재인式 구조조정 시금석
정부는 오는 8일께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회의를 열고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의 운명을 결정한다. 지금으로서는 두 회사 모두 살릴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때문이라지만 정부 내에서는 “시장에 좀비기업도 무조건 살린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미국발 무역전쟁으로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거꾸로 부실만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조선사 구조조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향후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GM도 이달이 1차 분수령이다. 한국GM 노사는 7일 전후로 임단협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현재 한국GM 직원 1만6,000명 가운데 15% 수준인 2,400명가량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비용절감을 위한 노사협상이 타결돼야 정부 지원도 가능하다. 정부와 GM의 실사도 이르면 이번주 중 시작된다. 이미 군산공장 폐쇄로 일자리 2,000개가 사라질 예정이다. 향후 협상에 따라 수천에서 수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할 청년일자리 대책도 구조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매년 청년실업률은 졸업 시즌인 2월에 최고치를 찍고 3~4월에 높은 수준을 기록한다. 지난해 1월 청년실업률은 8.6%였지만 2월 12.3%를 거쳐 3~4월에 11%대였다. 정부가 이달 중 내놓을 청년일자리 대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북 리스크-대북정책 성과못내면 北 태양절 전후 도발 가능성
통상 4월은 순탄하던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의 방향이 일순간에 악화되는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의 최대 명절이라는 태양절(김일성 생일, 15일)과 조선인민군 창건일(25일, 2015년에 2월8일로 변경) 등 김씨 일가의 정당성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념일이 몰려 있다. 북한 정권은 4월을 전후해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정권의 안정성과 힘을 과시해왔다. 김일성 100회 생일을 앞둔 2012년 4월13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은하3호를 발사하고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9년 4월에는 보란 듯이 장거리 로켓 은하2호를 발사했고 핵시설 불능화를 원상회복하면서 핵연료봉을 재처리했다. 여기에 평창올림픽으로 미뤄놓은 한미군사훈련도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등 대화 재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이 될 비핵화의 ‘문’을 과연 열 수 있느냐가 가늠쇠다. 대화 과정에서 남북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올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유지할 경우 태양절을 전후해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대화의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4월 한미군사훈련 등으로 인해 대북관계가 일시적이나마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능현·김영필·빈난새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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