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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울린 무역전쟁]"냉전 때 만든 법 동맹국에 투하...美 견제할 다자무역체제 탑승을"

<하> '급변하는 통상환경' 전문가 지상좌담

하반기엔 달러 강세 전환, 환율전쟁 비화 가능성

강자중심 양자체제 됐는데 통상원칙 청사진 없어

이슈별 공조체제 등 현실주의적 전략 수립해야





“서로 보복관세를 물리는 상황만 놓고 보면 대공황이 시작되기 직전 양상과 같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뽑아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 25% 관세 카드에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이 보복관세를 예고하자 전문가들은 다시 무역전쟁 시대가 돌아왔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약소국의 안전판이 돼주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힘을 잃고 힘이 지배하는 양자통상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 미국과 중국·EU 등 우리의 거대시장인 G3가 수입규제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일 경우 그나마 한국 경제의 성장을 끌고 있는 수출도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달러화가 강세로 갈 올해 하반기에는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까지 비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5일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 5인에게 급변하는 통상정세에 우리 당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물었다.

-대공황 당시나 지난 1970년대 닉슨 쇼크에 견주는 이들이 있다.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

△최원목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1920년대 말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각국이 관세를 서로 보복적으로 올리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인데 (현 상황을) 대공황 전조로 판단해야 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트럼프 계열이 상하원 다수가 되며 이런 경향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11월이 중요하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백악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만큼 사태가 심각해서 의견이 다양하게 나오는 게 아니겠느냐. 게리 콘 백악관 국제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자리를 걸고 (25% 일괄 관세에) 반대했던 것도 심각한 상황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최병일 이대 국제대학원 교수=무역확장법 232조는 1960년대 냉전시대에 만든 법이다. 동맹국에 발동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다 무시하고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남용하고 있다. 콘과 같은 ‘메인스트림(mainstream)’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트럼프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미국 수입규제에는 세계 주요 국가가 다 들어가 있다. 12개국, 53%로 했으면 우리에게 직접 타격은 컸을 테지만 파장은 축소될 수 있었는데 트럼프가 일괄 25% 관세부과 카드를 선택하면서 전선이 확대됐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상황을 본다면 대공황 시작 직전의 양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덕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치닫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부담을 적지 않게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수입규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피해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최원목 교수=직접수출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미국 내 투자에서 비즈니스 코스트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보호무역 조치로 중국 시장에서 우리 상품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간접효과가 더 클 텐데 교역이 30~40% 저해되는 효과는 각오해야 한다.

△정 본부장=수출 자체뿐 아니라 투자 등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른 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가 이렇게 계속 밀어붙인다면 (철강 아닌) 다른 산업도 요청이 들어올 수 있다.

△허 교수=미국이나 일본·유럽·중국보다 우리의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내수·소비·투자가 모두 비리비리한데 수출로 3% 성장했다. 수출로 끌고 가는 경제인데 무역전쟁으로 가면 그만큼 피해가 막대해질 수 있다.

-미중 전면전이 벌어지면 ‘컬래트럴 데미지(부수적 피해)’가 클 수 있다.

△정 부총장=분야로 딱 집어서 피해영역을 찾기 힘들다. 제조업에서 철강을 안 쓰는 분야가 어디 있나. 그동안 중국산 저가 철강을 많이 써온 중소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최원목 교수=미국이 중국 수출상품에 보복을 하면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반도체나 전자기기·기계류 등에 대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미국이 지적재산권으로 중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반사이익도 얻을 수 있다. 중국과 맞출 것, 미국과 맞출 것을 잘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

-미국이 철강 25% 관세에서 ‘사안별 면제’ 가능성을 언급했다.



△허 교수=25% 관세를 일괄 부과하면 오히려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한 철강재 수입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필요한 것들은 꼭 수입하겠다는 의사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백악관에 제출했던 보고서에도 예외조항이 들어가 있다.

△최원목 교수=미국은 협상가다. 안보나 다른 측면의 투자 등에서 지렛대 효과를 노린 것 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있고 중국과의 양자협상도 있고 북한 핵 문제 등도 염두에 두고 발언했다고 본다. 철저하게 미국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정치적 시그널을 주면서도 양자협상의 지렛대를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나.

△최병일 교수=뉴노멀의 시대에 기존 다자체제가 붕괴하고 강자 중심의 결과지향적 양자통상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블루프린트(청사진)’가 여전히 없다. 사드 보복 카드를 공개적으로 포기한 것, 미국의 불합리한 무역구제 조치에 결연하고 당당하게 대응한다는 것 외에는 원칙이라고 할 것도 없다. 기본 틀을 세우는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청사진을 먼저 마련한 다음에 실무적인 어프로치가 있어야 한다.

△정 부총장=미국의 일방주의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다자적인 힘밖에 없다. 국제적으로 이야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도 입장표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U 등 통상 라인이 굳건한 국가도 이렇게 당하고 있다. 우리의 통상정책 라인이 취약한 만큼 정책역량을 획기적으로 보강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허 교수=대통령 등 톱 레벨의 한미 다이얼로그 채널을 개설해야 한다. 타 우방보다 현저히 나은 대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현저한 불이익을 면하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실무 차원에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신호를 담는 대응책을 내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최종 수위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WTO 체제가 약화하고 있다. 양자·다자무역 체제에서 힘의 논리가 더욱 강해지는 통상환경 변화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최원목 교수 =WTO 1.0시대는 갔고 2.0시대가 왔다. 2.0시대의 WTO는 전통적 이슈를 다루면서 서로 협의하는 수준에 머물고 구속력 있는 판결을 내리는 역할은 축소된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부족한 나라는 미국의 의도대로 다자체제에서 양자체제로 흘러갈 경우 불리하기 때문에 메가(mega) FTA에 들어가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 다자 포맷으로 들어가 공조하면서도 미국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정 본부장=다자체제가 상당한 위기에 봉착한 것은 맞지만 다자체제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럴수록 유사한 그룹의 나라들과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갈 수 있는 판도 짜볼 필요가 있다.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허 교수=미국 달러화가 지금 원하는 대로 상당히 약세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미국 무역 파트너가 외환시장 개입을 꺼리면서 그 나라 통화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화도 강세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환율전쟁으로 끌고 갈 명분이 지금으로서는 없다. 4월이 아니고 연말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수입이 늘어나고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수도 있다.

△최병일 교수=환율전쟁도 하려면 할 수 있다. 매년 4월하고 10월에 환율보고서가 나온다. 미국이 들고 있는 수단은 많다. 중장기를 내다보는 청사진 마련하고 (대통령이) 통상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정 본부장=미국은 각국의 환율조작을 엄청나게 비판하는데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환율전쟁까지 벌이는 것은 좀 부담이 크지 않을까 한다. 물론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팔면서 영향을 주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세종=김상훈·빈난새기자 박형윤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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