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미국계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지분을 11년 만에 모두 정리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자산 처분 움직임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매각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역보복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인대·정협)가 끝나는 오는 20일 이후 중국의 맞보복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고조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CIC는 지난 2007년에 사들인 블랙스톤 지분을 5년간 단계적으로 매각해 최근 남은 지분을 모두 정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스톤은 이달 초 공시에서 지난달 22일 기준으로 CIC의 투자법인인 베이징원더풀인베스트먼트(BWI)가 자사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CIC가 블랙스톤 투자를 위해 세운 BWI는 2007년 블랙스톤의 기업공개(IPO) 직전 30억달러를 들여 지분 9.9%를 챙겼다.
CIC가 5년 전 블랙스톤 지분을 축소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블랙스톤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할 것으로 예상하는 곳은 적었다. 2008년 미 금융위기 이후 블랙스톤 주가가 급락하면서 공모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악화 상태가 이어지자 CIC의 투자성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중국 내에서 제기되기는 했지만 베이징 금융가에서는 CIC의 블랙스톤 지분매각 속도가 빨라진 시점이 지난해인 점을 들어 미국과의 통상갈등 고조에 따른 여파가 지분 정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 압박과 함께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기업에 대한 인수 승인을 거부하며 통상 압박을 가하자 중국 지도부가 미국에 대한 경고 신호로 CIC의 블랙스톤 지분매각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븐 슈워츠먼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중국 국부펀드의 미국 초대형 사모펀드 지분매각은 중국의 대미 통상 맞보복 조치의 시발탄 성격이 짙다. 중화권 매체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위한 헌법개정안이 통과된 이번 전인대가 20일 폐막하면 중국 당국이 미국산 수입 농산물과 항공기 등에 대해 대거 무역보복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을 일찌감치 쏟아냈다. 환구시보 같은 중국 관영 극우매체들은 대미 경제보복 카드로 애플 아이폰과 보잉사 항공기 구매 제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 규제 등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 견제를 목적으로 브로드컴의 미 퀄컴 인수 시도를 저지한 데 따른 맞대응으로 중국 당국이 퀄컴이 추진 중인 NXP 인수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저지한 데 대해 퀄컴의 NXP 인수에서 마지막 관문으로 남은 중국 당국의 승인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당국의 무분별한 해외 M&A 통제정책과 맞물린 중국 기업들의 긴축 움직임도 미국 자산시장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사정당국의 표적에 오른 안방보험그룹의 경우 미국 스트래티직 호텔은 물론 미국 뉴욕에 위치한 미주본부 25층 건물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중국의 현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이난항공(HNA)그룹도 자금난 해소를 위해 파크호텔&리조트와 힐튼호텔 지분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부동산 자산매각에 나선 다롄완다그룹은 시카고 랜드마크인 98층 비스터타워를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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