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산읍 매곡리.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을 빠져나와 차량으로 10분가량 더 달리자 안동 풍산산업단지내에 거대한 규모의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SK케미칼(285130)이 4,0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국내 첫 세포배양 백신공장이다. 겉으로는 여느 식품공장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방진복을 겹겹이 껴입은 연구원들이 첨단 장비를 매만지며 백신 생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극도로 위험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다루는 곳임에도 공장 안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고요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겨울철에 주로 유행하는 독감 백신의 생산이 끝나 요즘에는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며 “출시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누적 매출이 80억원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이 지난 2012년에 완공한 안동공장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세번째로 준공한 세포배양 백신 전용공장이다. 기존 백신은 달걀을 활용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유정란 배양 방식으로 제조된다. 1930년대부터 이어져 안전성은 검증됐지만 제조기간이 5~6개월에 달하고 변종독감이나 조류독감 같은 변수에 취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세포배양 방식은 유정란 대신 세포배양기 안에 바이러스를 증식시킨다. 백신 생산기간이 2~3개월에 불과하고 유정란 없이도 백신을 생산할 수 있어 차세대 백신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SK케미칼은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4종의 독감 바이러스를 모두 예방할 수 있는 4가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를 개발해 글로벌 바이오·제약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에는 세계 두번째로 대상포진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대상포진 백신은 다국적 제약사 MSD의 ‘조스타박스’가 10년 가까이 시장을 독점해왔다. 하지만 SK케미칼의 가세로 연간 800억원 규모의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대적인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SK케미칼의 대상포진 백신은 국산 백신 자급률 50%를 넘기는 첫 제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국산 백신 자급률을 70%까지 달성한다는 계획이지만 지난해 기준 주요 백신 28종 중 국산화에 성공한 백신은 13종에 불과했다. SK케미칼은 현재 수두, 소아장염, 폐렴구균, 자궁경부암, 장티푸스 등 차세대 백신의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백신 명가’로 부상한 SK케미칼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백신 전문업체 사노피와 1억5,500만달러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사노피는 SK케미칼의 첨단 백신 생산기술을 이전받아 변종 바이러스까지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범용 독감 백신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상균 SK케미칼 안동공장장은 “백신 국산화는 산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과 의료 안보의 관점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분야”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프리미엄 백신을 지속적으로 선보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안동=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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