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은행원이 아닙니다. 투자해서 돈을 버는 투자가이고 미래에셋대우는 투자기업입니다. 언제까지 대출해주고 이자 받는 업무에 매달릴 겁니까.”
글로벌 투자은행(IB) 도약을 천명한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기존 투자에 안주하지 말고 해외 인수합병(M&A)과 제약·숙박업 등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라고 주문했다.
20일 IB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 주요 기업의 매물에 대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자기자본 8조원으로 국내 증권사 중 최대 자본력을 갖췄지만 글로벌 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장 큰 M&A 중 하나인 베인캐피털과 함께 카버코리아를 매각해 1조5,000억원의 차익을 누린 골드만삭스의 ‘아시아스패셜시츄에이션 펀드’는 미래에셋대우 등 국내 초대형 IB가 도전해 볼 분야라는 게 내부의 평가다.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대출의 하나인 인수금융, 그중에서도 이미 대출이 진행된 기업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갈아타는 리파이낸싱(자본재조정)에서 은행을 제치고 급성장했다. M&A에 비해 품이 덜 들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누리는 업무로 신입사원들조차 M&A보다 인수금융부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그러나 박 회장은 평소 ‘투자의 야성(野性)’을 키우라고 강조해왔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5,04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10년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세전이익 목표가 1조원으로 지난해 대비 50% 이상 더 성장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박 회장은 연초 신년사에서도 “투자 자산이 국내냐, 해외냐 하는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고객에게 부합되는 자산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객에게 서비스해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의 지적처럼 국내 M&A 시장은 대형 매물이 씨가 말랐지만 글로벌 시장의 M&A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중국 주요 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알짜 자산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알짜 매물을 과식해 단기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하이난그룹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상하이, 호주 소재 주요 부동산뿐 아니라 세계 2위 호텔 업체인 힐튼의 지분 일부를 블록딜(지분 대량 매각)로 팔았다. 완다 역시 테마파크와 77곳의 호텔 사업 등을 10조5,000억원에 부동산 개발업체 룽촹에 매각했고 계열 영화사 완다필름의 지분 일부를 알리바바 등에 팔았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인수한 곳들은 선진국에 기반을 둬 중국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량자산”이라면서 “중국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국내 자본의 투자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주목하는 글로벌 1위 기업 중에는 중국 1위 제약사 항서제약이 있다. 국내 바이오 1위 업체인 셀트리온 3개사의 시총은 60조원 수준으로 항서제약(30조원)보다 많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으로 보면 항서제약은 앞으로 300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는 게 미래에셋대우의 진단이다. 미래에셋대우의 글로벌 주식본부가 미국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최우선주로 추천하는 것 역시 글로벌 1등에 투자하라는 철학에 따라서다.
호텔 부동산에 주로 투자해온 미래에셋그룹의 투자 방향도 숙박 공유나 호텔 운영사 위주로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호텔 업계는 최근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의 등장으로 요동치고 있다. 중저가 호텔들은 에어비앤비와 직접 경쟁하며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처럼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지 않아 5~7년마다 리모델링 비용을 투입하지 않아도 돼 경쟁 우위를 가진다. 미래에셋은 기존에 투자한 고급호텔인 포시즌스는 중저가를 겨냥한 에어비앤비와 고객이 겹치지는 않지만 숙박 공유 서비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포시즌스 인수를 통해 호텔 부동산이 아닌 운영회사의 높은 수익모델을 파악하고 앞으로 투자 기회를 찾겠다는 생각이다. /임세원·강도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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