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고령화 시대에 가장 두려운 질병이다. 치매 가족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치매 환자는 지난 2015년 65만명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10%에 육박한 데 이어 오는 2030년에는 120만명, 2050년에는 270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 진단을 받으면 평균 9년3개월가량 생존한다. 치매 예산이나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치매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인지장애로부터 시작해 중증 고도 치매로 진행된다. 아무리 힌트를 줘도 약속이 기억나지 않으면 건망증을 넘어 치매 초기다.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50~70%를 차지한다.
문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치매 치료제 개발 임상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치매 정복에 암운이 드리워졌다는 점이다. 1~2년 전만 해도 치매의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제거 치료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어느새 사그라졌다. 현재 치매 치료제는 증상을 완화해주는 수준에 머문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치매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쌓여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등 훨씬 복잡한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여전히 치매 정복의 꿈을 꾸고 있다.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과 신경독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단백질의 응집을 억제하는 메커니즘과 비(非)신경세포를 타깃으로 한 전임상과 임상진입 후보물질 도출을 목표로 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김재광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치매를 ‘마음속 지우개’로 규정한 뒤 “현재 치매 완치제는 없어도 조기 진단과 약물을 통해 늦출 수는 있다”며 “최근에는 타우단백질이나 치매를 일으키는 염증 반응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3상에 진입한 후보 치료제만 해도 아젤리라곤·나빌론 등 30여종이나 된다.
미국·영국·일본 등은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츠하이머책임법 등 치매 관리와 대응을 위한 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국가책임제를 선언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치매DTC(Diagnosis·Treatment·Care)융합연구단을 출범시켰다. 치매 조기 예측, 치료, 환자 케어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주관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한국한의학연구원·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6년간 합동연구를 하는데 서울대병원 등의 임상 활용과 와이브레인 등 기업들의 경제성 분석 등을 통해 오는 2021년까지 기업에 기술이전과 상용화 가능한 연구성과를 내는 게 목표다.
배애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치매DTC융합연구단장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해 환자의 뇌파·시선·자세 등 신경퇴화 기전과 관련된 생체신호를 파악하고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기반 예측 모델 개발로 2021년까지 치매 조기 예측 시스템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을 통해 치매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인지재활 훈련을 돕는 데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과학자와 의사들은 치매 예방을 위해 “절주하고, 담배를 끊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이가 들어도 책과 신문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는 적절한 수면을 권장한다. 2013년 미국 오리건건강과학대학의 아일리프 박사팀은 마우스 등의 실험을 통해 잠자는 동안 뇌에서 치매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점차 없어지는 것을 밝혀냈다. 스웨덴에서는 1,500여명의 남성을 40년 동안 추적한 결과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1.5배나 높았다. 미국과 스페인 공동연구진은 하루 9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은 6~8시간 자는 이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수면제를 오랫동안 복용해도 치매에 걸릴 확률이 50%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