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뇌물·횡령죄 등 6개 죄목과 12가지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여부를 검찰과 변호인단이 제출한 서류로만 판단했다. 이는 피의자가 전직 대통령인 만큼 사안이 중대한데다 6·13지방선거가 다가오는 등 정치적 여파까지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2일 “피의자 본인의 포기 의사가 분명한 이상 피의자 심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시점부터 이미 진행해온 수사 자료와 변호인 의견서 검토만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 전 대통령 본인이 불출석 의사를 분명히 밝힌데다 변호인까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에 조건을 걸자 법원은 이례적으로 피의자 측 진술을 듣지 않고 심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법원은 이날 오전10시30분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일 심문기일을 통보한 직후 이 전 대통령 측이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심문 필요성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졌다. 여기에 이튿날 이 전 대통령을 대리해 심문에 출석하겠다던 변호인단까지 갑자기 불출석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심문 절차 자체가 취소됐다.
예상과 달리 검찰과 변호인 사이 치열한 공방이 사라짐에 따라 207쪽에 이르는 검찰 구속영장과 변호인단이 준비한 의견서가 양측을 대리하게 됐다. 즉 법원이 양측 주장을 담은 서류를 두고 법리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속인지 여부를 판가름했다는 얘기다.
핵심 쟁점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보유지분(19.91%)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가진 다스 실제 소유주라고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또 아내 김윤옥 여사가 다스 법인카드를 10년 가까이 썼고 아들 시형씨가 큰아버지이자 다스 회장인 이상은씨 배당금을 따로 관리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 ‘다스 실소유주는 이명박(MB)’이므로 삼성그룹 다스 미국 소송비용 대납, 다스 경영 비리 등 혐의를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다스는 형님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가 경영자문 형태로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실제 소유권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특히 아내 김 여사의 법인카드 사용이나 아들 시형씨의 배당금 관리 등 검찰이 제기한 다스와 이 전 대통령 사이 연결고리도 “친인척끼리 돌아가면서 썼다” “형·아들 사이의 금전 문제”라는 논리로 방어했다.
이날 법원은 11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국가정보원·민간기업·종교계 등에서 110억원대 뇌물을 받았다고 기재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측근 진술을 토대로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실 등을 미리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수수 사실을 부인하거나 지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나마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서 전달받은 특활비 10만달러(약 1억원)를 인정했지만 이마저도 “모종의 대북공작금으로 썼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측근 진술을 두고도 이 전 대통령은 조작했다거나 허위로 진술하고 있다고 일축하는 데 반해 검찰은 ‘기본적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어 신병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며 “측근 진술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두고 법원이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스 실소유주·뇌물수수 의혹과 함께 측근 진술을 법원이 인정하느냐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이 자택에 계속 머무를지, 구치소로 갈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이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법원 결정을 기다렸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그대로 머물 수 있다. 반면 영장을 발부하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구치소로 향해야 한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에 출석한 뒤 서울중앙지검 내 임시 유치시설에서 대기하다가 검찰이 제공한 승용차를 타고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동했다. 검찰은 영장 청구서에 구속 장소로 서울구치소나 서울동부구치소를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을 발부 이후 7일간의 집행기간이 보장된다”며 “검찰이 영장을 곧바로 집행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새벽이 되면 인권 문제나 전직 대통령 예우를 고려해 그 시간을 23일 낮으로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안현덕·윤경환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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