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일단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승계보다는 순환출자 해소에 방점이 찍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현대차그룹을 콕 집어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만큼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지배회사 체제를 선택했다는 점. 오너 일가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매각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털어내겠다는 포석도 깔렸다.
◇순환출자·일감 몰아주기 동시 해소 묘수=이번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마무리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와 기아자동차를 지배하고 이들 완성차 업체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제철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뀐다. 기존의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해소되는 셈이다. 그동안 재계와 증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정 회장에서 정 부회장으로의 승계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주요 계열사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후 투자회사를 한데 묶는 지주회사 체계는 각 계열사 간 분할 후 주식을 주고받는 식으로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내세우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꼼수가 아닌 정공법으로 순환출자를 깨겠다는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당장 정 회장 부자는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인수하기로 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약 4조5,000억원. 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3%를 보유한 대주주로 매각가는 1조5,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1조원을 포함하면 약 4조원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사재를 털어 이를 마련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배회사 체제를 선택해 대주주의 부담은 커졌다”며 “하지만 여러 계열사 주주들이 보게 될 손실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일감 몰아주기 비판도 털어냈다. 현대글로비스의 매출 대부분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운송으로 나온다. 앞으로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 계열사가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다른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승계 작업과 무관…모비스 중심 미래 사업=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를 보유한 대주주다. 기아차와 현대글로비스·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총 23.3%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지분 매입 비율에 따라 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분구조가 다소 변경되더라도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는 정 회장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은 확정됐다”고 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이 승계 작업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분할합병 이후 현대모비스가 그룹의 미래 기술 리딩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커넥티비티 등 핵심기술 분야에 대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법인 등을 활용한 지분투자 및 인수를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대상 사업 확대 및 조인트벤처(JV) 투자 등에도 나서게 된다. 미래 차의 두뇌 격인 전장 부문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현재 그룹 내 연구개발 체계도 개편이 예상된다. 현재는 남양연구소가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을 포함해 그룹의 전반적인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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