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종류의 책이다. 빨간 선이 그어진 200자 원고지에 적힌 “옛날 옛적에 한 피에로가 살았습니다”로 첫 장을 시작한 책은 줄기차게 펜 그림과 손 글씨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적을 행하는 마법의 모자를 물려받은 피에로가 잠시 육지에 나온 인어와 사랑에 빠져 반전을 넘나드는 서사만 특이한 게 아니다. 이따금 원고지 위에 꽃잎이나 작은 소라껍데기가 놓이고, 때로는 종이 한구석을 불로 태워 그을음과 재가 뒤섞인 장도 마주치게 된다. 예상 못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물과 갈기갈기 찢긴 종이도 등장한다.
저자 소낙비는 트위터(아이디 SONAK_dBjW)를 통해 2년 전부터 연재한 이야기를 근간으로 책을 출간했다. 한 컷씩 올리는 그림이야기를 기다렸다가 찾아 읽은 구독자가 40만 명에 달한다. 저자는 “원고지 위에 글을 쓰고 그리다 보니 그 특성상 글자 수나 그림 영역에 제한이 있다”면서 “인물의 개성이나 상황, 감정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소품·조명·효과 등을 사용해 1차원의 글에 2차원의 그림을 더하고 3차원의 ‘연출’로 완성했기에 ‘디렉팅 에세이’라 이름 붙였다”고 소개했다. 원고지가 제한적이니 단어 하나에도 깊은 고민이 배어있고 때로는 그림이 못다 한 말을 보여준다.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더 큰 자유와 소통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책의 형식과 내용이 딱 맞아떨어졌다. 1만5,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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