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부즈다오 시엔한링(我 不知道 限韓令·한한령 저는 모릅니다).
지난 2월 초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중국 투자자의 말은 의외였다.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중 한 회사의 임원인 그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체 투자를 위해 2개월 새 한국을 여섯 번이나 찾았다. 그에게 한한령은 비즈니스와 무관하다.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이날 투자설명회(IR)를 연 국내 엔터테인먼트 A사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해도 중국 투자가 그룹 두 곳을 응대했다”며 “중국 정부의 삐딱한 시선만 풀리면 돈을 싸들고 들어올 태세”라고 전했다.
한한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따른 정부의 입장일 뿐이다. 위안화 자금은 언제든 기회만 닿는다면 ‘K엔터’를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다. 때마침 30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사드 보복을 완전 해소하겠다며고 밝혀 지난해 주춤했던 중국 자본의 엔터 투자는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중국자본에게 K엔터의 매력은 IP(지식재산권·연예인)에 있다. 중국은 돈이 있고 한국은 글로벌 시장의 이슈를 만드는 IP를 생산한다. ★관련기사 4·5면
엔터테인먼트 상장기업 IHQ 인수전에 업계 1위 중국 기업이 두 곳이나 참여한 것도 IP에 대한 필요 때문이다. 텐센트를 포함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 1위 엔터 기업인 화이브러더스도 IHQ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화이브러더스는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IHQ 인수를 포기했지만 여전히 중국 업체들은 군침을 삼키고 있다.
중국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내 엔터터인먼트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 대표 여배우 판빙빙의 남동생 판청청은 한국 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3대 기획사 위에화엔터테인먼트와 국내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위에화와 스타쉽은 겉보기에는 업무협약 수준이지만 사실상 위에화가 스타쉽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 큰손이 ‘타이밍’만 되면 국내 엔터테인먼트사에 뭉칫돈을 베팅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판이 바뀐다는 것이다. 규모는 물론 산업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투자은행(IB)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딴따라판’이 이제 신성장의 아이콘인 콘텐츠 산업으로 부상했다. 자금조달 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대한 대접은 과거와 딴판이다. 국내 1위인 SM엔터가 2000년 상장될 당시에는 주관 증권사를 찾기도 힘들었다. 당시 상장을 담당했던 한 증권사 관계자는 “SM이 상장하려 할 때 한국거래소에서 ‘이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20여년 전만 해도 대형기획사들은 개인 큰손이나 사채시장, 건설사 등의 급전으로 투자를 유치했다. 명동의 큰손이던 원영식 W홀딩스컴퍼니 회장은 YG엔터나 JYP엔터의 상장을 도와 대규모 차익을 거두기도 했다.
SM엔터가 이달 초 키이스트와 FNC애드컬쳐를 인수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새로운 머니게임으로 들어갔다. 음원 시장의 불확실성에 배우 시장과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 결정을 했다. SM은 상장 이후 인수합병(M&A)에만도 약 1,7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상장 당시 360억원에 불과했던 SM의 기업가치는 올 3월 말 기준 1조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 2위 YG엔터도 배우를 적극 영입하며 콘텐츠 제작 위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콘텐츠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관련 기업 인수나 자체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SM의 M&A는 규모의 경제뿐 아니라 범위의 경제까지 추구한 것”이라며 “월트디즈니와 20세기폭스처럼 같은 업종 기업 간 M&A는 규모의 경제를, AT&T와 타임워너처럼 다른 영역 기업의 M&A는 수직계열화를 통한 범위의 경제를 노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호현·박시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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