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인도의 한 왕이 장님 여럿을 불러 코끼리를 만지게 하고 모양을 말해보라고 했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큰 기둥’ 같다고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평상’ 같다고 했다. 배를 만진 이는 모두 틀렸다며 ‘항아리’ 모양이라고 우겼다. 이는 자기의 입장에서만 사물의 본질을 생각하기 쉬운 인간의 성향을 일깨우는 우화이다.
우리 사회에도 자기의 생각에만 매몰돼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예산 사용에 대한 시각차가 그렇고 복지와 에너지·환경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차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정책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종합적 검토를 통한 근원적 해결보다 자기 입장만의 미봉책을 내놓기 일쑤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시공자 처벌만을 쏟아내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등 물량을 줄이면서 고용은 확대하라고 압박한다. 자기 영역의 정책과 직접 관계가 있는 예산 삭감에는 눈을 크게 뜨고 자기 분야와 관계없는 삭감에 따른 악영향에는 눈을 감고는 한다.
지난 수년간 건설산업은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공사비 함정에 빠져 있다. 책정 단계부터 설계기준보다 낮은 예산 편성과 이에 맞춘 부족한 공사비 반영, 저가경쟁을 유발하는 입·낙찰 기준과 불공정한 계약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책당국 한쪽은 낙찰률 문제가 아니라 공사비 산정체계의 잘못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입찰제도의 문제이니 그것만 고치면 된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은 없고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만 되풀이한다. 자신이 잡고 있는 부위가 일부이고 다른 부분과 연결돼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각기 코끼리의 다른 부위를 잡고 전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코끼리를 그리는 사이 지난 10년간 건설업 영업이익률이 10분의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공공공사 위주로 수주하는 업체의 30% 이상이 매년 적자를 보고 있다. 물론 부실공사, 건설 업체들의 경영난이 공사비 부족만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인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의 원인만 전체의 원인으로 환원시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사비 부족은 직접종사자 200만명과 그들의 가족, 수많은 전후방 연관산업과 지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모든 문제는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제대로 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제값을 치르지 않는 공사는 결국 궁극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경제 성장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공사비 정상화는 단순 예산 절감이나 어느 특정 부처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각 부처와 발주기관은 다른 데로 공을 넘기기보다 자기 영역의 문제부터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각자가 추진하는 안전 확보도, 일자리 창출도, 궁극적 예산 절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코끼리를 제대로 그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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