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버님께서 문화재를 수집하신 대의, 그 유지를 받은 ‘창고지기’일 뿐입니다. 귀한 물건들이 상하거나 다치지 않게 지키고 정리하는 것이 제 사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문화독립운동을 펼치며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를 창고지기로 낮춰 부른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보성중고등학교 이사장이 6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원로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이 수집한 다양한 컬렉션에 감화받아 동양의 정신성과 서양의 기법을 접목한 ‘색동 만다라’의 고유한 화풍을 이뤘다. 유학 당시 미국 휘트니미술관이 기획한 ‘젊은 미국 미술 1960전’에 선발됐고 동양인으로는 백남준보다도 앞선 ‘최초’였다. 그러나 지난 1962년 갑작스러운 간송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급히 귀국했다. 손위 형님이 요절한 탓에 장남 역할을 하며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살리는 데 매달렸다. 전 이사장은 선친의 유지를 이어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 붙이고 일 년에 두 차례씩 국보급 소장품의 일반 공개 전시를 시작했다. “문화재는 단순한 탐미의 대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매개체”라고 말한 전 이사장은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아왔다. 고인은 간송미술관 관장 외에도 서울대 교수, 국전 심사위원, 보성고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화가이자 상명대 미대 교수를 지낸 전영우 간송미술관 관장이 동생이다.
재단 출범 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협력해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열어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135호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등의 소장 유물을 일반 대중에 공개했다. 이후 보물 제1973호 신윤복 필 미인도, 보물 제1949호 겸재 정선 필 해악전신첩 등을 비롯한 다수의 소장품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하게 했다. 그가 평생을 산 서울 성북동 보화각 안채인 자택은 우리나라 1세대 서양건축가인 김중업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고인의 아내는 ‘와사등’ 시인 김광균의 딸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매듭장인 김은영 씨다. 슬하에 장남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 차남 전인석 삼천당제약 대표, 장녀 전인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차녀 미술가 전인아씨를 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오는 9일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02)2072-2010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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