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제조업황 둔화, 기업이익 전망치 하향, 외국인 자금 유출의 삼중고에 처할 위험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대두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제조품 수출국보다 원자재 수출국이 유리해진 글로벌 매크로 환경에서 오는 6월 중국 A주의 신흥국 지수 편입까지 예정돼 있어 유동성 측면에서 국내 증시에 부정적인 환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4분기 실적이 발표될 때까지는 당분간 매수보다 관망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16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1%(2.42포인트) 오른 2,457.49에 마감했다. 이날 개인이 634억원 순매수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385억원, 120억원 순매도하며 상승 흐름을 제한했다. 지난 1월 2,598.19까지 올라 2,600선까지 다다른 후 미국 인플레이션 쇼크에 조정 장세를 겪은 뒤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날 코스닥지수가 장중 899.2까지 오르며 2개월 만에 900선 돌파를 노리기는 했지만 코스닥 벤처펀드와 KRX300 지수 등 정부 정책에 의한 인위적인 부양일 뿐 본격적인 증시 회복으로는 해석되지 않았다.
국내 증시가 좀처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선 글로벌 제조업황 둔화 때문이다. 매크로 경제 환경이 원자재 수출국에 유리하게 바뀌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제조품을 수출하는 한국이 불리해졌다는 것이다. 박춘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달러 약세와 유가 강세로 브라질을 필두로 한 원자재 수출국의 기업실적 전망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제조품 수출국에 속하는 한국은 지난해 여타 신흥국 대비 높았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올해 큰 폭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실제 올해 들어 브라질 증시가 10% 넘게 성장하는 동안 국내 코스피 지수는 고점 대비 5.7% 떨어졌다. 특히 최근 미국의 시리아 공습으로 중동 리스크가 번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해 국내 증시에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업실적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증시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기업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최근 1개월 사이 1.58% 하향 조정됐다. 미국 관세 영향의 직격탄을 맞은 철강·금속 업종의 하락률이 6.57%로 가장 컸고 보험(-5.99%), 증권(-5.95%), 은행(-2.4%) 등 금융업종의 이익 전망치도 최근 1개월 사이 빠른 속도로 줄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에도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는 등 시중금리 효과가 제한적이고 정부의 금융 규제 강화 흐름도 금융업종 실적에 악재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전기·전자 업종지수의 이익 전망치도 3.8% 감소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기업들이 선방해도 지난해처럼 국내 증시 전체의 기업이익 상승세를 이끌어가지는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반도체의 경우 수출에 의존하는 만큼 원·달러 환율에 민감한데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골드만삭스도 상장기업 이익 상승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을 했다. 지난 9일 ‘아시아 태평양 포트폴리오 전략’ 보고서에서 골드만삭스는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Overweight)’에서 ‘중립(Marketweight)’으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의 주가순수익비율(PER)이 8.5배로 다른 아시아 지역보다 33% 할인됐지만 이는 내년 이익 전망치가 낮아진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매도세를 강화하고 있는 외국인 수급도 국내 증시에 불안요소다. 지난 1월 1조9,753억원 순매수한 외국인은 2월 미국발 인플레이션 쇼크에 1조5,612억원 순매도로 태세를 전환한 후 국내 증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이어오고 있다. 3월 7,405억원 순매도한 후 13일까지 1,567억원을 사들였지만 16일 들어 386억원을 팔아치우며 오락가락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6월 중국 A주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지수 편입도 유동성 측면에서 국내 증시에 부정적일 것으로 우려된다. 박 연구원은 “외국인투자가들의 중국 금융시장 접근이 쉬워지면 신흥국 내에서 성장 매력이 낮아진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MSCI 내 한국 비중 감소로 인한 외국인 자금유출 규모를 최소 6,000억원, 최대 4조3,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국내 증시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투자를 미루고 1·4분기 실적이 나올 때까지 관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은 떨어지고 있는 만큼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며 “1·4분기 어닝시즌을 앞두고 이익 모멘텀이 양호한 업종으로 포트폴리오를 압축할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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