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세를 카드로 결제할 때 붙는 수수료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서민과 중소기업 부담을 덜자며 지방세처럼 국세의 카드수수료를 없애라는 요구가 잇따랐지만 전체 세수 비중의 80%에 달하는 국세의 비대한 규모나 면제에 따른 새로운 비용 발생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17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세 카드 납부 규모는 42조4,000억원으로 전체 납부액의 16.8%에 이른다. 국세 카드 납부는 2008년 도입돼 2014년까지 카드 납부 비중이 1%대에 불과했지만 2015년 18조9,000억원(8.1%)으로 확 뛰어오른 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카드 납부의 편의성과 함께 카드사별로 마케팅에 따라 5~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무이자 할부 혜택까지 제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국세 카드 납부액이 폭발적으로 늘자 신용카드의 경우 납세액의 0.8%, 체크카드는 0.7%(5월부터 0.5%)씩 붙는 수수료를 면제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영세업자 대책 차원에서 면제 검토를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그보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6년 7월 의원 시절 비슷한 내용의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최근까지 국세 납부 수수료 면제 방안을 검토했지만 당장 면제하기에는 제한 사항이 많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민과 중소기업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국세 규모나 비용 문제,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도입이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세와 지방세의 규모 차다. 2016년 기준 지방세는 65조원, 국세는 223조원 가량이다. 지방세 카드수수료 면제의 비밀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개별 계약을 맺은 카드사에게 10~40일 정도 돈을 굴리는 ‘신용공여’를 허락한 데 있다. 카드사는 지자체별로 나눈 수백억~수천억원을 단기간 운용해 수수료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반면 국세는 단위 자체가 세목이나 시기에 따라 수조원~수십조원에 이르는 만큼 수요처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설사 카드사가 신용 공여에 나서도 지출 규모가 큰 국가 사업상 당장 돈이 필요한데 세입이 한 달가량 늦어지면 이 차이를 메꾸기 위해 한국은행 차입이나 재정증권 발행 등으로 이자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현금으로 세금을 내는 납세자와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에 따라 현재 8(국세)대 2(지방세)로 편중된 국세 비중이 낮아지면 카드 수수료 면제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여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저금리 기조에서는 신용공여에 따른 운용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세 비중이나 금리 등 여건 변화에 따라 정부 입장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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