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의전직원이 귀국편 비행기 출입구까지 마중 나가 특정 승객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경우 사실상 세관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밀수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다른 항공사나 최고위층 승객들도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19일 세정당국과 공항, 항공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항공사 의전 직원이 수행하는 자사 임원이나 정·관·재계 주요인사들이 비행기에 들고 탄 짐은 일절 세관의 검색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입국 체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세관 직원과 공항에 상주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잘 안다”며 “의전 직원이 붙으면 당연히 항공사 최고위급이나 내로라할 사람이란 것을 세관에서도 잘 알기 때문에 불시 검사를 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연한 밀수 방법은 이렇다. 특정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게이트 앞에 의전직원 A가 대기하다 짐을 넘겨받는다. 승객이 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의전직원 A는 짐을 들고 상주직원용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한다. 수하물(부치는 짐) 찾는 곳에서 다시 만난 의전 직원 일행은 마지막 세관을 통과하는데 별다른 제지 없이 입국장으로 빠져나간다. 일반 승객들의 경우 세관 직원이 불시검사자로 지정하면 가방을 개방해 샅샅이 내용물을 보여줘야 하는 것과 다르다. 물론 대부분 일반 승객은 불시 검사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휴대품 반입 허용규모(600달러) 이상 물품을 들여오다 적발되면 납부세액의 40%에 이르는 가산세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신고를 하거나 가슴을 졸이며 입국장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반드시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의전직원과 함께 들어오는 경우와는 확연한 차이다.
공항 직원이라고 누구나 탑승구역에서 입국장까지 쉽게 물건을 가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면세점이나 은행 환전소 등에서 일하는 일반 공항 근무자는 승객과 분리된 별도의 출입구를 이용하는 데 이곳을 지나려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휴대품도 엑스레이 촬영을 한다. 일반 직원이 면세품을 몰래 들여오다가는 적발되는 구조다. 또 비행기 화물칸으로 부치는 짐은 반드시 엑스레이 검사를 받는다. 세관은 해외 주요 쇼핑지역이나 테러우범국가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대해 탑승객 전체의 수하물을 살펴보는 불시 전수검사도 시행하지만, 의전 대상 승객이 전수검사를 받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의전 직원이 들어주는 특별한 짐만 공항 밖까지 무사통과가 보장되는 셈이다.
이런 관행은 오래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수년 전까지 최고위층이 아닌 공항·항공사·세관 직원들도 반입 허용규모 이상 물품을 들여오며 ‘눈인사’만으로 불시 검사를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항공사 의전직원이나 요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깔린 점도 암묵적으로 불시검사를 피하는 요인이었다”며 “최근 문제가 제기된 이상 세관의 검사도 강화되겠지만 이런 시스템에서는 언제든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