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칠레산 신선 포도에 관세 누락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칠레산 포도에는 정부가 5월부터 11월까지 45%의 계절관세를 붙여야 함에도 이를 FTA 관세법 시행령에서 누락한 것이죠. 쉽게 말해 45%로 적어야 하는 것을 0%로 해버린 겁니다. 현재로서는 2년 간 못 걷은 세금만 약 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내에서 흘러나오는 금액만 이렇습니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누락 당시 2016~2017년 수입물량으로는 28억원입니다. 정부는 “단순 실수”라고 하고 있지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농축수산물을 포함한 전체 교역 품목의 관세율의 전면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0년도 넘은 구조적인 원인
실제 포도 관세 누락은 보다 구조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본지 보도(칠레산 포도 관세 2년간 누락…통상전쟁 이러고도 견뎌낼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3260865) 후 기획재정부는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습니다. 관세청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도 개정안을 돌렸는데 왜 찾아내지 못했느냐를 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많아 책 한권 분량이라고 합니다. 개인이 일일이 찾아 내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인 것이죠. 관계부처에서도 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이 안 되려다 보니 여러 실수(?)가 겹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가 겹치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1만8,000여 품목 수작업으로 작성
안을 들여다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한·칠레 FTA의 양허품목은 1만8,000여개입니다. 지금까지는 담당 실무자가 엑셀창을 띄워놓고 변경사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컨트롤+C 컨트롤+V’해서 작성해왔습니다. 수작업인 셈이죠. 우리가 맺은 FTA만 24개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만 1만8,000에 24를 곱한 43만2,000여개의 품목을 일일이 손으로 다뤄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죠.
다행히 정부는 이를 전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일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제라도 최대한의 전산화를 통해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관세 누락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번 일은 기본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FTA를 맺어놓고도 시행령 작업을 잘못해 관세수입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국내 농업기반을 지키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방법 찾는다지만 세금 12억원은 어떻게
문제는 또 있습니다. 잃어버린 12억원입니다. 본지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집 살림이라면 그렇게 했겠나? 정직하게 사는 월급쟁이들은 만져보지도 못할 돈인데”
그렇습니다. 나라곳간에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정부는 법무법인에 의뢰해 수입업자에게 거두지 못한 관세를 최대한 걷을 방법을 찾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일이기 때문이죠. 소급해서 세금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실무자를 중징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번 일이 발생한 과정과 이유를 명확히 밝혀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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