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원에 이르는 국토교통부의 주택도시기금 전담운용사 선정을 놓고 자산운용업계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연기금투자풀·고용노동부 등 이미 국가 공적자금 상당 부분을 운용 중인 삼성자산운용이 입찰에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관련 업계가 견제의 날을 세우고 나섰다. 삼성자산운용 측은 “운용사 입장에서 당연히 도전해야 할 사업”이라는 입장이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한 회사가 사실상 국가 공적자금 절반 이상을 굴리게 된다는 점에서 “잘하는 다른 운용사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들은 국토부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 전담운용기관에 삼성자산운용이 선정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란 주택청약저축·국민주택채권을 통해 조성된 여유 자금이다. 지난 2014년 21조4,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42조1,371억원까지 늘어나 금융시장의 ‘큰 손’으로도 불린다. 국토부는 전담자산운용제도(OCIO)를 통해 4년 단위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각 1곳을 운용전담기관으로 선정해 운용하고 있다. 2014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증권이 선정돼 4년간 자금을 운용해 왔으며 오는 6월 말로 사업자 지위가 만료된다. 이에 국토부는 최근 전담운용기관 선정을 위한 제안 요청서를 ‘나라장터’에 게시하고 위탁 계약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자산운용업계가 유독 삼성자산운용 움직임에 날을 세우는 것은 이 회사가 이미 공적자금 상당 부분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규모가 큰 대표적인 공적자금은 연기금투자풀, 고용노동부 보험기금, 국토교통부 주택도시기금 등 세 가지. 삼성자산운용은 이미 14조원 규모(업계 추산) 연기금투자풀과 13조원 규모 고용노동부 산재보험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주택도시기금 전담운용기관 자리까지 꿰차면 사실상 국내 공적자금 50% 이상을 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자산운용의 경우 정부기금을 한데 모은 연기금투자풀을 통해 이미 일부 주택도시기금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번 입찰에서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자격을 얻어 적극적으로 선정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잘하는 운용사가 맡아 수익을 내면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기관 자금 비중이 높다고 문제 될 게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운용사들은 공적자금 주간사 선정에 있어 ‘삼성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동종 업계이자 경쟁사로서 삼성증권이 어떤 부분에서 잘하는지 뚜렷한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면서 “회사의 이점을 얘기할 때 ‘우리가 잘한다’는 부분을 강조하지만 잘잘못은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새로운 사업자에게도 기회를 부여해 삼성 편중 현상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들도 “기금당 주간사가 복수로 선정되는 이유는 경쟁을 통해 수익률을 제고하고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국내 증권사는 50여개 이상, 운용사는 190여개 이상으로 약 250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올 상반기 국토교통부 주간사에 삼성자산운용이나 한국투자 계열사가 선정된다면 전체 공적자금 주간사에서 한 회사의 비중이 50%가 훌쩍 넘는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수익률이 악화되는 경우 모든 기금 수익률 저하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해 삼성증권 발행어음 보류 사유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주요 원인인데다 최근 삼성증권 사태도 삼성 계열사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만큼 같은 금융계열사가 공적자금 운용사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삼성자산운용 측은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삼성증권 사태는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삼성자산운용의 이번 입찰과 연관 지을 이유가 없다”면서 “각 기금 전담운용사 선정은 단독이 아니라 복수로 선정하기 때문에 ‘삼성 편중’ 등의 주장을 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운용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로서 기존 방침대로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증권사 가운데서는 일찌감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입찰에 대비한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KB증권 등이 경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5년 입찰에 참가했던 삼성증권은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난 상태다. 국토부는 이번 입찰에서도 한 개 그룹사에서 2개 회사가 중복 선정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은 유지하기로 했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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