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대한항공의 국적기 박탈 청원이 쏟아지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대한항공에 공무원의 해외 출장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시 국적기를 이용하도록 하는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를 통해서다. 1980년 대한항공과 처음 계약을 맺은 이후 3년마다 계약이 자동 갱신되는데 해당 항공사에 도덕적·법적 문제가 발생해도 4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손 볼 의지도 없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조 전무의 갑질 사건 이후 대한항공 관련 청원이 1,200건 넘게 올라와 있다. 대한항공의 국적기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과 회사 이름에 포함된 ‘대한’과 ‘Korean’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청원이 대부분이다. 대한항공과 소속 계열사 진에어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청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커지는데도 정부는 GTR 제도를 통해 대한항공에 매년 400억원 수준의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GTR 제도는 1980년에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갈 때 국적기를 이용하게 한 공무원 전용 티켓이다. 정부는 1980년 대한항공과 처음 계약했고 1990년에는 아시아나항공과 계약했다. 이 계약은 정부나 항공사가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3년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4년 대한항공의 10대 노선 GTR 항공권 판매 실적은 1,797억원에 달했다. 이를 이용한 공무원은 21만2,574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보다 크게 적은 425억원, 이용 공무원 수는 3만6,056명이다.
GTR 티켓은 일반 티켓보다 가격도 비싸다. 지난해 이용호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수기 이코노미석 기준(대한항공)으로 인천~미국 뉴욕간 왕복 항공권이 일반권인 경우엔 111만1,200원이지만 공무원들은 2.7배 비싼 302만600원에 구매했다. 87만1,200원짜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왕복권 티켓을 232만7,250원에 사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사혁신처와 예산 기준을 마련하는 기획재정부는 GTR 제도를 손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 출장은 일정이 자주 바뀌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GTR을 통해 항공사가 그 부담을 지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반드시 GTR티켓을 이용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1980년대에 비해 최근에는 모바일과 온라인을 통해 예약 변경 쉬워진데다 수수료도 많이 낮아져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정부와 항공사간 GTR 계약서에는 ‘좌석확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선언적으로만 돼 있어 항공사의 책임 부담도 적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국제선 여객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제항공운송사업자가 7개인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만 계약을 체결한 것도 차별적 대우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한항공 조사에 합류했다. 최근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조사를 벌인 것이다. 경찰과 관세청에 이어 공정위까지 정부가 한진그룹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