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규제 때문에 저해된 혁신성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보다 많은 혁신 서비스와 제품을 접할 수 있게 하자는 게 이번 논의의 골자다.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되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정부는 기업이 마음껏 연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혁신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신기술, 신제품을 가로막는 규제를 모두 풀고 시범사업이 가능토록 규제 샌드박스 도입도 조속히 시행하겠습니다.” 최근 모 기업 연구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을 약속하며 한 말이다. 이 중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바로 규제 ‘샌드박스’다.
샌드박스는 미국의 가정집 뒤뜰에서 어린이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모래통(Sandbox)에서 유래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사업자의 새로운 제품, 서비스에 대해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도 심사를 거쳐 시범 사업, 임시 허가 같은 박식으로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해주는 제도다.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한 후 문제가 있으면 사후 제도를 마련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맘대로 뛰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가 없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새로운 혁신적인 사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2016년 6월 금융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이 도입을 결정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은 금융산업 메카로서의 위상이 흔들리자, 핀테크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이후 홍콩,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에서도 ‘규제 샌드박스’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정책은 신산업과 혁신적인 사업은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규제하는 ‘사전허용, 사후규제’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한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신산업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4차 산업혁명에 선제 대응하고, 그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전략으로 혁신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과 산업계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 뿐인 정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의료·금융 등 서비스 산업은 아직 규제의 틀에 그대로 갇혀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주요 분야로 꼽고 있는 빅데이터·인공지능·자율주행차·드론·푸드테크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사업도 규제가 앞길을 막아서고 있다. 원격진료와 개인정보 관련법도 요원하다. 최근 암호화폐와 ICO를 둘러싼 정보의 규제정책도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가장 강한 쪽에 속한다.
반면 일본, 미국, 중국, 싱가폴 등 우리의 경쟁국들은 탈규제로 4차 산업혁명에 신속하게 대비하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직접 규제 완화를 지시하고 이행 상태를 점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규제 샌드박스’를 제도를 도입해 파격적인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도 최근 기업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친기업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도 ‘중국 제조 2025’라는 로드맵을 완성하고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산업 고도화를 위한 규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어떤 규제개혁 정책이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실행력이다. 과거 정권처럼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선언만 해놓고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나라도 과거 역대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외쳐왔다.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었고,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으며,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마다 그렇게 목소리 높여 외쳤던 규제 개선 성과는 매우 초라한 것이 사실이었다. 여전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제가 심한 국가로 남아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성장을 주도했던 제조업 기반의 조선, 섬유, 금속 등 주력 산업이 일제히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가동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고, 자영업, 소상공인 등의 서민경제도 심각할 뿐만 아니라 실업률도 역대 최고로 높은 상황이다.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나려면 혁신 성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도 활력을 찾게 해야 한다.
새로운 혁신성장이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선 과감한 규제 개혁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과감한 규제 개선은 본받을 만하다. 일본은 미국 아마존과 손잡고 지바시를 드론 택배 국가전략 특구로 지정하는 등 관련 규제를 풀었다. 지바시는 드론 실증단지를 조성해 드론 택배 상용화를 눈앞에 앞두고 있다.
중국의 규제 개선 행보는 더욱 과감하다. 쓰촨성 한 지역에만 드론 전용 공항 150곳을 짓기로 하는 등 신규 혁신 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네거티브 규제 정책을 펴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중국 정부는 새로운 혁신 산업이 나오면 규제를 하기보단 일정 수준으로 성장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느 정도 성장한 시점부터 관련 산업을 제도로 편입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처음부터 관련 사업이 규제에 막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낡은 규제로 인해 혁신성장과 신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국민 불편까지 가중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카풀 앱 규제와 불법이라는 이유로 퇴출당한 우버가 대표적인 사례다. 드론의 경우도 중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 수준이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과감한 규제 개선으로 이제 막 꽃을 피우려고 하는 혁신 성장 산업을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개혁한다면 혁신성장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제개혁을 제때 실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룩한 것 없는 과거의 규제 개혁 정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 정부는 4차산업 관련 신성장 혁신 산업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조속히 실행하고, 시범 사업이 용이한 특정 지역에 규제 프리존을 지정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안병익 대표는···
국내 위치기반 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지리정보 소프트웨어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상임이사, 한국LBS산업협의회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포인트아이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 2010년 위치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씨온(현 식신 주식회사)을 창업해 현재 운영 중이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글 안병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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