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27일 열리면서 새로운 평화질서 구축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수정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하면서 한반도가 평화 국면에 접어들 경우 과학기술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강력한 과학기술 중시정책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비해 과학기술 논문이 1%도 안 되지만 최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게재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가 분석한 결과 지난 2004~2014년 북한 과학자가 발표한 SCI급 논문은 98건에 그쳤지만 2015년에는 한 해에만 58건이 발표됐다. 중국·독일·호주 등 국제협력 논문도 급증했다. 최현규 KISTI 정책기획본부장은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이 남한보다 뒤처져 있지만 발사체와 핵무기, 핵융합과 분열 기술, 레이저에 의한 동위원소 분리, CNC 선반 등은 앞서 있거나 대등하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군수기술이 민간기술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 시 보건의료·천연물·동식물·산림·화산·지진·광물자원·환경 등 과학기술협력이 본격화할 수 있다. 과거 10년간 전면 중단됐던 교류협력을 위해 정부와 연구기관 등에서도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북한에서 가장 흔한 결핵 환자가 11만여명인데 방대한 결핵 균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쌓고 남한 기술로 결핵을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다. 북한에서 기생충 감염은 많지만 자가면역질환(면역 시스템이 정상세포 공격)인 아토피 피부염이나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은 거의 없는 점도 주목된다. 신희영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북한의 질병 패턴을 잘 연구하면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질병 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라든지 신약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과총 포럼에서 남북 접경지에 ‘헬스 시큐리티(Health Security) 공동연구시설’ 구축 방안도 제안했다.
전통 천연물과 동식물·산림 연구로도 시너지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는 잠재가치가 큰 수만종의 토착 생물자원이 존재한다. 반면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림이 크게 훼손돼 홍수와 가뭄에 시달린다. 남북이 약초나 동식물 등을 연구하며 민둥산 조림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는 철원에 북한의 헐벗은 산림 조림을 위한 종묘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교류협력이 재개되면 제일 먼저 산림녹화에 나서고 싶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6월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생명공학연구원·한국한의학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가칭)천연물혁신성장추진단을 구성해 남북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생명연의 박호용 박사팀은 KIST 소속 시절부터 남북중 공동으로 백두산 천연물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한의학연은 남북 합작으로 남북전통의학연구센터 설립을 희망하고 있다. 당초 평양에서 출발한 숭실대 역시 북측과 천연물이나 약초·한약재 등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권학철 KIST 천연성분응용연구센터장은 “남북이 함께 약용식물을 조사하면 여러 새로운 천연물 원료를 개발할 수 있다”며 북방계 약초 재배·생산 스마트팜을 제시했다. 박호용 생명연 책임연구원은 “바이오 연구나 (솔잎혹파리 등) 산림 병해충 방제기술 공동연구에 나서면 서로 도움이 된다”고 기대했다. 앞서 생명연은 2003년부터 3년간 북한의 국가과학원과 현지 종합식물도감을 만들고 식물표본과 종자 등의 시료채집을 했다.
백두산 화산 폭발 우려와 한반도 지진 증가에 따른 공동연구도 시급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과거 북한에서 3차례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를 제안받았으나 2010년 5·24조치로 이뤄지지 못했다. 천지 아래 마그마 가까이 시추공을 뚫고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국제연구그룹도 결성돼 있으나 유엔 대북제재 해제가 선결조건이다. 이윤수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백두산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화산 예측과 관측기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주·포항 등 한반도 동남쪽에서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평양 등 북한의 심장부에서도 지진 발생 우려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광물자원 채굴과 철도 연결을 위한 협력도 기대된다. 방경진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남북자원협력실장은 “잠재가치가 큰 광물자원이 북한에 많은데 채광과 정련기술 공동연구와 장비지원이 따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다만 장비 가동을 위한 전력과 수송을 위한 인프라 개선이 같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규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협력여건이 조성되면 남북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ICT 협력사업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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