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아이돌 가수 지드래곤의 유럽 단독 콘서트에서는 현금 외 ‘ENT캐시’라는 암호화폐를 통해 공연 티켓이 거래됐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아이돌그룹 티아라의 멤버 두 명이 호주에 있는 한 암호화폐 발행회사와 계약을 맺고 개인 명의로 된 암호화폐를 출시했다. ‘은정 캐시’ ‘큐리 캐시’라 이름 붙여진 이 암호화폐를 통해 이들을 지지하는 팬들은 공연 티켓이나 음원, 스타 ‘굿즈(관련상품)’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암호화폐가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다양한 온라인 계약에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스타와 ‘팬덤(한 대상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을 잇는 암호화폐까지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로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막강한 소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 팬덤을 잡아 암호화폐 가치를 단기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일시적 투기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핀테크연합회는 K팝 등 한류 팬을 대상으로 한 코인 발행 플랫폼 ‘코펀’을 연내 시범 서비스할 계획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와 관련된 팬픽(소설) 등 2차 창작물을 제작해 내놓으면 이 플랫폼에서 코인으로 사고파는 구조이다.
이더리움을 활용한 암호화폐 ‘케이스타코인’ 역시 ‘팬덤 이코노미’를 겨냥한 사례이다. 전 세계 한류 팬들이 손쉽게 관련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케이스타라이브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곳에서 직접 콘텐츠를 제작·배포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팬덤은 비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캐셔레스트’는 최근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유명 인물을 내세운 코인 발생과 거래가 가능한 ‘인플루언스체인’을 상장했다. 가수나 배우·정치인 등 소위 ‘인플루언서’라고 일컫는 이들이 자신의 토큰을 직접 발행해 팬이나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운동가인 고 넬슨 만델라 암호화폐도 등장할 예정이다. 스타그램글로벌은 최근 넬슨만델라재단과 ‘스타토큰’ 발행에 합의했다. 이 토큰 발행을 통해 생기는 수익 일부는 만델라의 업적을 기리는 기부금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투자 목적으로만 거래됐던 암호화폐가 팬덤과 만나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사회공헌 등 새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는 많은 사람들의 이용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며 “투자 목적, 거래 위주에 머물렀던 암호화폐가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만큼 이처럼 팬덤 등을 활용한 새 가치가 통용되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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