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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비밀의 화원’ 한국은행 금통위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회의시작전 위원들과 관련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2일 은행연합회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에 임지원 JP모간체이스은행 서울지점 수석본부장을 추천했습니다. 한은 금통위원 인사는 형식상 은행연합회가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와대가 사전 낙점한 인사를 은행연합회가 추천하는 탑-다운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추천=임명’이라는 얘기입니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지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거물급 인사가 임 본부장을 밀었다는 후문이 파다합니다. 임 본부장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에도 참여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캠프에 참여하고 국민경제자문회의에도 몸담고 있는 누구나 아는 거물급이 임 본부장의 뒷배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인사는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금통위원에 외국계 투자은행(IB) 이코노미스트를 낙점했다는 점에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금융권에 외부인사를 수혈해 과감한 개혁을 유도하는 문재인식 인사의 일환으로 읽히지만 일각에서는 ‘이해상충’ 우려를 제기합니다. 외국계 투자은행 딜러를 대상으로 세일즈하는 이코노미스트가 한국경제의 주요 정보를 접하는 금통위원에 임명되는 것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성을 임명하려다 보니 억지춘향식 인사가 이뤄졌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인사에 앞서 금융권에서는 금통위원을 노리는 경제전문가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 서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됐습니다. 그 만큼 금통위원은 경제전문가 사이에서 ‘최고’의 자리로 꼽힙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이 내린 직장’의 특징을 한번 꼽아봅시다. 우선 보수가 많아야 합니다. ‘해고’ 위험 없는 ‘고용보장’까지 되면 금상첨화지요. 그런데 거기에 ‘책임’까지 지지 않는다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 아닐까요? 한은 금통위원이 이 세가지 조건에 딱 부합합니다. 금통위원의 연봉은 3억2,000만원에 달합니다. 금통위원 4년이면 12억원 이상이 보장되는 셈입니다. 여기에 활동비 성격의 업무추진비까지 지급되니 돈 쓸 일도 없습니다. 임기(4년)도 무조건 보장됩니다. 정권이 바뀌면 장·차관은 물론 임기가 명시된 공공기관장들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지지만 금통위원 만큼은 예외입니다. 최근 한은 총재가 연임됐으니 금통위원의 연임 가능성까지 열렸습니다. 잘 하면 8년을 해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책임’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보수와 책임은 비례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인데 금통위원에게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금리는 7명이 결정합니다. 만일 잘못된 금리결정이 이뤄지면 7분의 1만큼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금리결정에 대한 비난은 사실상 한은 총재(현재는 이주열 총재) 한사람에게 쏟아집니다. 과거에는 사실상 한은 총재가 금리를 결정하고 금통위원은 ‘거수기’에 불과했으니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금통위원들조차 “외부의 압박은 없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금리에 대한 의견을 낸다”고 호언합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총재 한사람에게 금리결정의 책임을 지웁니다. 물론 총재의 몫이 크기는 합니다. 총재는 자신의 표에 부총재의 표, 총재 추천 몫 금통위원의 표까지 사실상 3표를 혼자 행사합니다. 이 두 사람은 총재의 추천으로 금통위원이 됐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총재의 의중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개별 금통위원이 7분의 1 만큼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권한과 보수에 비해 책임은 너무 적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익명’이라는 장막도 금통위원들이 책임을 피하는 수단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한국은행의 금리결정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행은 6주에 한번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대차한 금리 결정이 금통위 회의일 하루에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 금통위원들은 금통위가 열리는 전주 금요일 오전에 경제상황점검 회의를 엽니다. 이 회의는 한국 경제 상황 전반을 리뷰하는 자리입니다. 금리 결정을 위한 일종의 워밍업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게임은 금통위 전날 오전에 열리는 ‘동향보고 회의’ 입니다. 이 회의에는 금통위원과 한은 집행부 간부들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논의 내용은 금통위 의사록에도 담깁니다. “한 금통위원의 질문에 집행부는 이러이러한 의견을 냈다”는 대목이 바로 동향보고 회의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회의를 마치고 금통위원들은 점심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1~2시간 가량 금통위원들끼리 또 다시 회의를 엽니다. 한은 집행부도 참여하지 않는 그야말로 ‘비밀회의’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점심 식사 이후 금통위원끼리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에 사실상 금리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각자의 의견이 드러나고 총재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금통위원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 비밀회의는 금통위 의사록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 열리는 금통위는 사실상 요식행위입니다. 사실상 금리가 결정된 상황에서 각자 최종 의견을 발표합니다. 하루 사이에 금리에 대한 의견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제로’입니다. 발언 순서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 “선임 금통위원부터 발언하는 경우가 많은데 딱 정해진 것은 아니고 시계방향으로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발언하기도 한다. 총재가 그때그때 결정한다”(한은 관계자)고 합니다.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도록 금통위 의사록에는 발언 순서가 뒤섞여 기록됩니다.

물론 소수의견은 의사록에 표시됩니다. 하지만 다수 의견이 잘못된 금리 결정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을 경우 누가 어떤 이유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익명’이 보장되니 책임도 없는 것입니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세히 공개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그야말로 금통위원만의 특권인 셈입니다. 금통위원 후보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한은은 ‘금통위원 발언의 익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야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금리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금리는 ‘소 잡는 칼’에 비유됩니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합니다. 금리 결정 한번에 수 조원 아니 수십 조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외국 중앙은행도 금통위원 한명 한명의 의견을 공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 익명을 보장하고 소수의견을 표시하는 정도입니다. “한은만큼 투명하게 의사록을 공개하는 중앙은행도 드물다”는 게 한은의 항변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가능합니다.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나 지방 연은 총재, 연준 이사들은 다양한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매파고 비둘기파인지, 같은 매파라도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은 금통위원들은 ‘절간의 중’과 같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외부 강연도 하지 않습니다. “금융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미국의 지방 연은 총재나 연준 이사들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것이 금융시장에 혼란을 주는 것 아닐까요? 결국 ‘책임과 비난’이 두려워 절간에 숨어 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금통위원들도 언론 접촉을 합니다. 한달에 한차례 가량 기자 간담회를 열어 경제 현안에 대해 발표합니다. 그런데 신문을 유심히 보세요. 동일한 금통위원의 발표를 모든 기자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보고 들었는데 기자마다 언론마다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자나 언론이 자기 편한 데로 금통위원의 발표를 해석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금통위원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금통위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결론 없는 애매 모호한 발표로 일관합니다. ‘시장에 금리정책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로 유명한 황희 정승 뺨 칠 정도입니다. 도대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결론이 없다보니 어떻게든 제목거리를 찾아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금통위원의 발언 중 일부분만 발췌해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니 기자마다 언론사마다 기사가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한은과 금통위원은 이를 즐기는 듯 합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해석이 나온 기사들을 보면서 어떤 한은 간부는 “성공했다”며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시장에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는 애매한 신호를 주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지만 그러려면 기자간담회는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요?

금통위원 자리 꿰차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줄을 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금통위원이 얼마나 행복한 ‘꽃길’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의사록에 금통위원 개개인의 의견을 자세히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처럼 외부에 나가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개진하는 금통위원이 등장하길 기대해봅니다. 그게 오히려 금리결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아닐까요? 시장과의 소통을 한은 총재 한 사람에게만 맡기에는 금리의 무게감이 너무 큽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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