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제(對審制)’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지만 갑자기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회계 논란을 둘러싸고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금융감독원이 조만간 법정에서처럼 치열한 논리 다툼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시가총액이 25조원에 달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진 위상을 감안하면 마치 국내 바이오 산업에 대한 재판이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번 분쟁의 핵심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고의성’을 갖고 분식회계를 했느냐 그러지 않았느냐인데도 말이다. 이는 어쩌면 셀트리온(068270)과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2개의 리딩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바이오의 현실을 말해준다.
지난 1일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조치 사전통지서’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촉발된 이번 논란은 2주째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삼성·바이오·분식회계·주가·경영승계 등 사회·경제적으로 휘발성이 큰 키워드들이 한꺼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간의 주장이 워낙 첨예하고 상반된 탓에 결론을 예단하기는 섣부른 상황이다. 하지만 결과에 따라 금감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넓게는 삼성그룹 경영진과 회계 업계에까지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사안이 엄중한 탓에 오는 17일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에서 열리는 대심제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회사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번 사건으로 국내 바이오 산업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까지 증시에서 바이오주는 그야말로 ‘핫’한 업종이었다. 바이오라는 이름이 붙기만 해도 주가가 몇 배씩 오르고 ‘셀빠(셀트리온 투자자)’ ‘삼빠(삼성바이오로직스 투자자)’라는 말도 회자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규모 있는 바이오 기업은 물론이고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바이오벤처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전과 달리 싸늘해지고 있다. 바이오주들의 주가 역시 확대된 변동성 속에 된서리를 맞고 있다.
하지만 주가의 변동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회계감독의 불확실성이다. 1년 전에는 ‘오케이(OK)’라고 했다가 이제 와 ‘노(NO)’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더구나 제조업과 달리 사업의 리스크가 엄청난 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획일적 잣대만 들이댄다면 말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의 핵심 사안인 콜옵션을 둘러싼 ‘고의성’을 금감원이 어떻게 명쾌하게 ‘증명’해낼 것인가도 문제다. 자칫 일각의 주장처럼 삼성의 경영승계와 궤를 짜 맞추기 위한 무리한 해석이 뒤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그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지만.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다면 마땅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특히 미래 먹거리의 대표주자인 바이오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기업과 산업을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그것이 아무리 삼성이고 바이오라고 해도 말이다. 시쳇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처럼 결과에 과정을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9일 한 가지 뉴스가 외신으로 전해졌다. 일본 최대의 제약 업체 다케다약품공업이 아일랜드 제약사 샤이어를 사들인 것이다. 인수금액은 무려 67조원. 한국 전체 제약사의 한 해 매출보다 2배 이상 많은 액수다.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란다. 일본의 사상 최대 해외 인수합병(M&A)이 바이오 제약 부문에서 일어났다.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 간에 사활을 건 경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는 미래를 먹고 사는 산업이다.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이 0.001%에 불과한 ‘리스크투성이’ 산업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글로벌을 향해 비상하기 시작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틀 후면 금융당국과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이 ‘회계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내팽개쳐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회계감독의 신뢰성과 한국의 바이오 산업,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han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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