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총론은 맞는데 각론들이 연결이 안 되고 있어 아쉽습니다. 인수위가 없이 갑작스럽게 들어선 정부다 보니 정책 공약을 여과하는 과정이 생략됐고 결국 모든 정책을 동시에 내놓았기 때문이죠. 재수강도, 졸업도 가능하지만 좋은 점수로 보기 어려운 75점을 주는 이유입니다.”
지난 3년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직을 마치고 지난 2월 대학으로 돌아간 임채운(사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에 대해 “기업이 먼저 성장하게 한 뒤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의 중기정책은 선후가 바뀐 상태”라며 “중기 정책과 노동 정책 중 어떤 것을 먼저 시행할지를 두고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모든 정책을 병렬적으로 하다 보니 정책 간 충돌과 혼란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과 같은 현 정부의 중기정책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어린 아이에게 당장 독립할 것을 요구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국내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그 규모에 알맞은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업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 어른으로 만든 후에 책임감을 물어야지 지금처럼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중소기업에 책임감을 먼저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50인 이상 등 규모가 되는 제조기업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도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은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해 이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아직은 책임경제를 말할 때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등장에 대해서는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고 밝혔다. 역대 정부가 달성하지 못한 중소기업청을 장관급으로 승격시킨 것은 바람직하지만, 출범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기대했던 수준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임 교수는 “중기부의 등장으로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 경제에 대한 공감을 하나로 응집시킨 점은 아주 긍정적”이라면서도 “중기업계는 대기업의 갑질 등 불공정행위가 개선되고 혁신성장이나 벤처정책 등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중기부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중기부가 여타 부처처럼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는 부처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로부터 협조를 받을 뿐 정작 자기사업은 없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임 교수는 “중기 정책이 모든 부처와 연관돼 있는 만큼 중기부가 컨트럴타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신설 부처이다 보니 그 정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통일부총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혁신부총리를 만들어 여러 부처의 중소기업·벤처·창업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이 좀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제안했다.
중기정책에 혁신성장이 안 보인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수준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소상공인이나 영세기업을 튼튼하게 만들고 중소기업을 성장의 견인차로 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4차산업혁명 등을 통해 벤처기업이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만큼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중기부가 혁신성장에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혁신성장이 경제구조 개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도 중기부는 ‘창업벤처혁신실’을 두는데 그쳤을 뿐 ‘혁신성장’만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고언이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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