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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손이천의 경매이야기] 책벌레 정조때부터 유행... '숨겨진 화가 인장' 발견땐 가치 쑥

가격 천차만별인 책가도

1791년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 세워

'인장' 금지된 궁중화원들 작품속에 암호처럼 이름 남겨

19세기 민화로 확산...'한국의 美' 대표로 세계 순회전도

추정가 2억~5억원에 경매에 나온 ‘책가도’. 148x389cm 크기의 8폭 병풍이다. /사진제공=케이옥션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일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뭐니뭐니해도 많고 좋은 작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일부러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아도 최고가를 경신하거나 후대에 남을 만큼 중요한 문화재급 작품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작품도 있었고, 몇 점 남지 않은 이중섭의 작품, 일본에서 돌아온 안중근 의사의 단지가 찍힌 글씨도, 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들어간 겸재 정선의 작품이 실려있는 보물 ‘퇴우이선생진적’도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또 그 같은 즐거움이 찾아왔다. 오는 23일 경매에 출품되며 도록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대표작인 19세기의 8폭 병풍 ‘책가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책가도’ 또는 ‘책거리’라 칭하는데 ‘책가도’는 책장에 책과 각종 물건이 꽂힌 형태를 의미하고 ‘책거리’는 책장이 없는 그림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책가도가 유행하게 된 것은 책벌레로 알려진 정조가 1791년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대신 책가도 병풍을 세우면서부터다. ‘일월오봉도’는 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란 뜻으로 왕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동시에 왕조가 영구히 지속되리라는 염원을 내포하고 있다.

책가도의 근원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귀족의 저택에 있던 개인서재 ‘스투디올로(Studiolo)’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귀족들은 각자의 서재에 귀하고 진귀한 예술품을 수집하여 전시하곤 했는데, 이런 수집열풍이 선교사들을 통해 17세기에 청나라에 전해지고 ‘다보각경(多寶閣景)’이라는 그림이 탄생한다. ‘다보각경’은 다보각 같은 장식장에 도자기, 청동기, 옥 등 귀한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다보각경’은 조선 통신사를 통해 조선으로 유입되는데 이것이 ‘책가도(冊架圖)’라는 독특한 양식과 화풍으로 변화 발전하게 된다.

책과 학문을 매우 각별하게 여기며, 왕실에서는 규장각이나 장서각 등 도서관을 만들어 책을 소중히 다루었던 우리나라의 전통은 중국의 다보각경을 ‘책가도’로 변신시켰고 책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려던 정조의 생각에 의해 크게 유행하게 된다. 심지어 정조는 화원 중 책가도를 그리지 않는 자는 귀양을 보낼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독서와 책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유난했던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릇 옛사람 말에,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없어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평소 서적을 읽는 것을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삼았지만 일이 많고 분주해서 책을 읽고 외울 여가가 없으면 일찍이 그 말을 생각하곤 했다. 이 책가도 그림을 보고 마음으로 즐기니 그 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조 ‘홍재전서’ 중 ‘일득록’에서)



정조시대의 김홍도가 책가도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김홍도의 책가도는 남아 있지 않고 정조 이후 궁중화원이었던 장한종(1768∼1815)이나 이형록(1808~1883 이후)이 제작한 책가도가 현존하고 있다. 케이옥션 경매에 이형록이 개명 전 ‘이응록’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린 책가도가 출품된 적 있다. 이형록은 책가도의 대표적인 화가로 57세에 이응록으로, 64세에 이택균으로 개명했고 작품도 이름과 함께 변화한다.

책가도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작품 속에 숨은 도장그림이 있다는 것과 이 도장그림의 유무에 따라 작품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궁중화원은 자기가 그린 그림에 인장을 찍을 수가 없었기에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렵게 그림 구석에 암호처럼 자신의 인장을 남겼다. 이형록이 책가도의 대가로 인정받는 것 역시 작품 속에 은밀하게 숨겨둔 인장이 발견된 첫 번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발견된 장한종의 책가도에서도 장한종이 자신의 이름이 찍힌 인장을 옆으로 돌려 구석에 그려 넣은 것이 발견되었다.

궁중과 양반가에서 유행하던 책가도는 19세기 이후에 서민들에게도 확산되며 조선 후기 민화로 자리 잡았고, 나중에는 서민들의 염원을 담아 ‘다산’, ‘장수’, ‘출세’ 등을 의미하는 도상도 함께 그려지게 된다.

한 왕의 취향으로 시작한 책가도는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 유행을 담았고, 이제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글로벌하게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정조 때부터 약 200년간 이어져 내려온 책거리 병풍 50여점이 2016년 미국 뉴욕 스토니부룩대 찰스왕센터 전시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캔자스대 스펜서박물관과 미국의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어느덧 책가도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의 전령이 됐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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