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23일 아침까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고 한다. 발신인 목록에는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부터 주요 회원사 대표, 경제계 원로들까지 다양했다. 21일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던 기존 입장을 버리고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관련한 국회 논의를 중단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밝힌 데 대한 항의 세례를 손 회장이 직접 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했던 손 회장은 실무자들로부터 제반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경총은 23일 정오께 중소기업중앙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국회 논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루 만에 백기를 들고 재차 입장을 번복한 셈이다.
이틀 남짓한 시간에 경총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21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최저임금의 범주에 매달 지급되는 상여금을 포함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한 만큼 소위는 결론을 내자는 분위기였다. 현금성 숙박비를 포함한 각론에서만 의견차를 좁히면 되는 상황. 반대로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민주노총은 다급해졌다. ‘판을 깨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민노총이 손을 내민 곳은 정반대 편인 경총. 경총도 내심 매월이 아니라 격월로 지급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노총으로서는 신의 한 수였다. 경총은 원수지간인 민노총과 한배를 타기로 선뜻 결정했다. 이를 결정한 이는 송영중 상근부회장이다. “판이 깨지면 매달 지급되는 상여금도 장담 못 한다” “민노총과 손을 잡으면 후폭풍이 더 크다”는 실무진의 만류를 송 부회장은 오히려 호통을 치며 뿌리쳤다고 한다. 노동계에서 먼저 대화를 제시한 만큼 이를 받아야 한다는 게 송 부회장의 독단적 판단이었다.
항의를 떠안은 손 회장이 결국 중심을 잡고 입장을 되돌렸지만 경총의 입지는 이미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은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김영배 전 부회장에게 엄중 경고했던 것보다 오히려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분위기다.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정권의 코드에 맞추려다 결국 사달이 났기 때문이다. 중심에는 최근 바뀐 집행부, 특히 송 부회장이 있다는 분석이다. 4월 선임된 송 부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청와대 노사관계비서관을,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에는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을 지냈다. 자연스레 선임 당시부터 친노동·친정부 성향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회원사들조차 “사용자단체인 경총 상근부회장까지 친정권 인사를 앉히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일이 벌어지자 회원사들은 “경영계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던 박병원 전 회장과 김영배 전 부회장이 곡절 끝에 물러나자 코드 인사가 들어와 친노동 일변도인 정부에 아무 쓴소리도 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는 24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논의를 속개한 후 결론을 낼 예정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대로 매달 지급되는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송 부회장이 결국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최악의 수를 뒀다”며 “앞으로 회원사들이 어떻게 경총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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