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본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항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점법에 대리점단체 구성권을 명문화한다. 또 본사의 ‘갑질’로 피해를 본 대리점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법원에 금지 명령을 청구하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3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리점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가맹, 대규모 유통, 하도급 분야에 이은 공정위의 마지막 4대 갑질 근절 대책이다.
대리점 거래는 영세한 규모의 중소유통업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분야로 본사에 의한 불공정 거래행위가 빈발하는 분야다. 특히 지난 2013년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기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대리점 본사의 갑질 행태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5년 대리점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불공정 거래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공정위는 지난해 처음으로 약 4,800개 본사와 15만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실태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본사는 대리점 외에 온라인 판매를 병행해 대리점의 본사 의존도를 높이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참고해 이번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은 크게 거래 관행 개선과 대리점의 권익제고 측면에서 마련됐다. 우선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적발 시스템을 강화한다. 매년 업종별 서면실태조사를 실시해 거래관행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하고, 문제가 있으면 공정위가 직권조사에 나선다. 올 하반기에는 의류업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대리점이 익명으로 본사의 법 위반 행위를 제보할 수 있는 익명제보센터도 운영된다.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재 대리점법과 시행령이 담지 못한 금지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고시에 명시한다. 별개의 상품을 묶음으로만 공급해 대리점이 원하지 않는 상품까지 구입하게 하는 ‘구입강제’, 판촉행사를 실시하면서 대리점에 과도한 비용을 분담시키는 ‘경제상 이익제공 강요’,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상품·용역의 공급을 현격하게 줄이거나 지연시키는 ‘판매목표 강제’ 행위 등이 담길 방침이다.
업종별로 표준대리점계약서를 제정해 보급한다.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모범적인 거래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또 대리점에 안정적인 거래기간이 보장되도록 표준대리점계약서에 최소 3년 이상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설정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본사와 대리점간 비용 분담 비율을 사전에 설정하도록 하고, 인근에 신규 대리점을 개설할 경우 미리 통보하도록 한다.
대리점의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보장한다. 이를 위해 대리점단체 구성권을 대리점법에 명문화하고 대리점단체 구성·가입·활동을 본사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한다.
공정위가 제때 피해 구제에 나서지 못할 경우가 많아 대리점법에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피해 대리점이 공정위에 신고하지 않고도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를 중지하도록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되고, 피해 대리점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손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자료제출명령권도 대리점법에 신설한다. 본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라도 법원이 열람제한을 조건으로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대책을 계기로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대리점 분야의 불공정 관행이 개선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약자인 중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리점 분야에 종사하는 중소상공인 등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 시장경제의 활력이 유지되고 소득주도의 성장기반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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