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점포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전국의 점포를 잇따라 줄이고 있지만 경기도 안산이나 평택·의정부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지역의 점포는 새로 단장하거나 늘리고 있다. 일요일에 영업하는 점포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배경에는 300만명에 달하는 국내 체류 외국인 고객이 있다. 이들이 본국에 송금하는 금액은 연간 14조원에 달하고 해마다 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은행의 점포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는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외국인 근로자가 집중 거주하는 경기도 안산과 평택·의정부 등에 외국인 특화 점포를 잇따라 설립하고 있다. 외국인 특화 점포는 해외송금, 계좌 및 카드 개설, 입출금 서비스 등을 주로 제공한다. 은행권의 이 같은 행보는 비대면 영업을 강화하며 점포를 통폐합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일요송금센터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근로자가 평일에 근무로 방문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지난 20일 일요일에만 영업하는 송금센터를 평택에 열었다. 외국인 고객의 은행 업무를 돕기 위해 중국인 직원과 베트남·러시아어 통역 도우미도 근무한다. 국민은행도 최근 경기도 화성에 외환센터를 개설하고 일요일에만 환전 및 송금 서비스를 하고 있다.
외국인 고객만을 겨냥한 점포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외국인 근로자가 본국에 보내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송금 시장 규모는 연간 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평균 송금액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한 은행의 외국인 근로자 1인당 평균 송금액도 2015년 1만2,515만달러에서 지난해 1만5,544달러로 증가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도 올 3월 기준 225만여명으로 3년 뒤에는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송금 수수료뿐 아니라 한 번 고객으로 맞으면 추가적인 대출 등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은행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 은행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해외송금 수수료 인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국민은행은 아시아 18개국, 130개 해외 은행과 제휴를 맺어 송금 수수료를 1,000원으로 낮췄으며 우리은행은 송금액에 관계없이 5,000원의 송금 수수료를 받고 있다. 다만 해외송금에 드는 총비용에는 송금 수수료뿐 아니라 환전 수수료, 중개 수수료 등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국가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은행 지점을 이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송금 수수료 외에 1만~3만원가량의 수수료가 추가 발생한다.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낮춰도 은행들은 환차익이라는 쏠쏠한 수익을 거둘 수 있어 ‘남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대부분 통화는 송금할 때 환율이 기준환율 대비 1%가량 높다. 예를 들어 이날 현재 미 달러의 기준환율은 1,077.50원이지만 송금 시 1%가 더 높은 1,088.40원이 적용돼 1,000만원을 미국으로 송금할 경우 은행은 10만원을 환차익으로 남길 수 있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지난해 말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뛰어들고 있는 소액해외송금 업체 20여곳도 송금 시장 선점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소액해외송금업은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수수료가 저렴하고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을 집중 홍보하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운영 중인 소액해외송금 업체 ‘모인’은 송금액의 1.5%를 수수료로 받고 매매기준율로 환전해 고객은 환전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지점 방문 없이도 비대면 송금을 할 수 있고 송금 시간도 하루 이내로 짧다. 센트비의 경우 1만~2만원 정도의 수수료로 1시간 이내에 필리핀·베트남 등으로 송금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직접 경쟁하기는 버거운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소액해외송금 업체들이 시장 파이를 크게 잠식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소액해외송금 업체들은 건당 3,000달러, 1인당 2만달러로 송금 한도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것과 같다며 불만이다. 특히 월급을 한 번에 보내기를 원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소액해외송금 업체들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점포를 설립하며 공을 들이는데다 수수료도 낮추는 추세여서 소액해외송금 업체들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나 현대카드 등 2금융권도 해외송금 서비스를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어 백가쟁명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국내 해외송금 시장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뻔한 결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이변을 일으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